‘강직해서 불행했던’ 대신 권경우

사신단의 밀수를 단속해 대사헌에 올랐으나 관노로 전락한 권경우

시대를 막론한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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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도 계속되는 밀수꾼들 / 출처 : 픽사베이>

얼마 전 관세청에서 30억원대 담배밀수•유통 조직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홍콩으로 담배 1만여 보루를 수출했다가, 다시 컨테이너에 숨겨 밀수입한 뒤 서울 남대문시장 등에 판매했다고 합니다.

수출했을 때 담뱃값은 2500원이었는데 다시 들여와 팔 때는 4500원으로 오른 뒤였다니 짭짤한 밀수 장사였을 것입니다.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겠지만 말이죠^^;

외국과 교역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극히 일부만 제한적으로 허용한 조선에서도 밀수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고 최고 사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였습니다. 문제는 밀수 주범들이 사실상 나라의 최고위층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일년에도 몇 차례씩 파견되는 명나라 사신단을 통해 공공연히 밀수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또 사신단을 따라 명나라를 자주 오가는 통역사들 일부도 밀수를 통해 큰 부를 일궜습니다.

의주지도

<중국을 가기 위해 통관 절차가 이루어진 평안북도 북서단 ‘의주군’>

중국을 오가는 이들은 의주에서 통관절차를 거쳐야 했는데요. 관원들이 통행자들의 옷을 벗기거나 짐을 풀어헤치도록 한 뒤 금지된 물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뒤지곤 했답니다. 하지만 사신단 우두머리인 정사나 부사는 당상관(정3품) 이상 고위직들이었기에 무사 통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또 자주 국경을 오가는 통역사들은 현지 관원들과의 유착을 통해 단속을 피해 나가곤 했습니다.

권경우, 강직하게 밀수를 적발하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원리원칙주의자는 있는 법입니다. 성종 때 문신인 권경우가 대표적 입니다. 성종 8년(1477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명나라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인 천추사(千秋使)의 검찰관(檢察官)인 권경우가 통역사 조숭손이 함부로 마포 2백 62필, 수달피 15장, 호피 47장, 초피 5장을 싸 가지고 가는 것을 적발하여 아뢰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성종은 “근래에 북경에 가는 검찰관이 하나도 단속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권경우가 홀로 능히 하였다”며 이를 칭찬하고, 무려 4~5품계 높은 통선랑행사간원정언(정5품)에 임명하도록 합니다.

권경우, 밀수 적발로 파격 승진하다

유례없는 파격 승진은 조정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사헌부 대사헌이 나서서 “가상한 일이긴 하지만 검찰관 직분을 잘 수행했을 뿐이고 전쟁에서 적을 무찌른 공도 이에 미치지는 못한다”며 한두 품계만 올려주면 적당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몇 달 뒤 북경에서 돌아온 권경우 본인도 “공이 없다”며 승진 인사를 사양합니다. 하지만 성종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사간원 정원에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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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우를 아꼈던 성종, 창경궁에 위치해 있는 성종대왕 태실비 / 출처 : 위키백과>

권경우는 그 뒤로도 강직한 성품을 바탕으로 조정 안팎의 신망을 얻고 고위직으로 진출합니다. 하지만 1482년 권경우는 홍문관 부교리로 있으면서는 왕비 윤씨를 폐위시킨 처사를 비판하다 파직돼 4년 뒤에야 복직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권경우는 군비를 소홀히 한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조양을 탄핵해 면직시키고, 대사헌을 거쳐 형조참의로 있으면서 공정한 재판으로 이름을 널리 알립니다.

무오사화에 휩쓸린 권경우, 노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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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대, 무오사화에 휩쓸린 권경우 / 출처 : 네이버 영화 ‘간신’ 스틸컷>

하지만 연산군 4년(1498년)에 훈구세력이 김종직 등 사림세력에 큰 타격을 입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동생 권경유가 주모자로 처형된 탓에 권경우도 가산을 몰수당하고 강릉부 관노로 전락합니다. 평소 권력을 가진 이에게 구차하게 아부하지 않고 공정하게 직무를 처리한 까닭에 많은 이들이 권경우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중종반정 뒤 김종직, 김일손 등과 함께 적몰 되었던 가산을 환급 받고, 죄명도 신원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경우는 관노로서 세상을 뜬 뒤였습니다. 뒤늦게나마 명예는 되찾았고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지만, 권경우가 겪었어야 했을 고난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앞섭니다. 그 씁쓸함은, 한편으로는 권경우처럼 꼿꼿한 성품을 가진 이가 살아가기 팍팍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듯도 합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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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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