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 SF작가의 미래상상! 인공지능의 미래?

미래상상 인공지능 편 :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언제고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SF영화와 만화 그리고 소설 등을 보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어느덧 인간의 두뇌를 앞지르게 된 로봇들이 인류를 노예처럼 부리거나 아예 말살시키려드는 이야기들을 흔히 접하게 된다. 정말 그럴 수 있을지 따져보고 싶다면 일단 로봇과 인공지능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SF에서 로봇(혹은 앤드로이드)은 동적(動的)인 인상을 주는데 반해, 인공지능은 상대적으로 정적(靜的)인 이미지에 가깝다. 여기에는 실제로 그럴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로봇은 보통 인간처럼 팔다리를 갖고 움직이는 활동성을 고려해 설계되다 보니 전자두뇌가 들어간다 해도 그 크기가 제약되기 마련이다. 크기의 제약은 CPU 성능을 좌우하는 칩의 용량 제한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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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미래상상의 현실

 한편 인공지능이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공간은 작게는 건물 한 개 층에서부터 많게는 대형건물을 통째로 필요로 하며, 심지어 SF에서는 도시 전체에 그러한 기능이 문어발처럼 퍼져 있는 사례가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지력(知力)에 비하면 인간만한 몸집의 쇠 덩어리 로봇 안에 들어가는 전자두뇌 성능은 한계가 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수리계산능력은 소형계산기보다도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나은 대안을 머리 속에서 반짝 떠올리거나 한 마디로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의 행동거지를 로봇이 따라하자면 어지간한 크기(혹은 용량)의 CPU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고려할 때 마냥 방심할 수만은 없으리라.

*부가설명 : 무어의 법칙이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주장. 경험적인 관찰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했다.

초고밀도직접회로(VLSC)*보다 훨씬 더 압축률이 좋은 울트라급 초박형 정밀회로들이 꾸준히 개발된다면, 성능은 빌딩 공간 전체를 잡아먹는 기존의 인공지능과 맞먹지만 크기는 불과 인간의 두뇌만한 전자두뇌가 로봇에 탑재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부가설명 : 초고밀도직접회로(VLSC, very large scale integrated circuit)는 가로 세로가 불과 몇 mm 크기인 실리콘 기판(基板) 위에 10만~100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고농축회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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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미래상상을 가깝게 만드는 방안?

이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빨리 현실화할 수 있는 차선책도 있다. 인공지능이 로봇들을 자기 수족처럼 부리게 하면 된다. 여왕벌이 벌 떼의 실질적인 두뇌 역할을 하듯 인공지능을 정점으로 한 로봇들이 일종의 네트웍 군체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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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령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역량을 갖춘다 한들, 그것만으로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데 필요한 충분요건이 될 수 있을까? 자릿수가 129개나 되는 숫자의 소인수분해를 하는데 슈퍼컴퓨터들을 1,600여대나 동시에 병렬연결해서 동원하면 답을 얻는데 8개월이 걸리지만 양자컴퓨터는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초현실적인 연산능력을 자랑하는 양자컴퓨터라 해서 인류를 정복할 수 있을까?

단지 역량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뛰어난 계산능력이 자의식으로 바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두려움이 현실화되려면 로봇 혹은 인공지능이 개체성, 즉 자기 자신을 주위 세계와 분리해 인식하는 능력이 내재화되어야 한다. 어떤 보상도 없이 녹이 슬어 폐기처분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기만을 강요하는 무정한 주인에게 원망을 품고 자기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털어놓으려면 연산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자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지나치게 이 문제에 예민한 사람들은 이들의 연구가 자승자박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희로애락을 인간처럼 느끼는 로봇을 만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주변의 다른 존재들보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에 비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스스로 비교/판단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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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

로봇과 인공지능이 줄곧 개량되어온 지난 역사와 앞으로의 추세를 고려할 때, 필자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로봇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조만간 찾아오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거나 적어도 대등한 로봇이 어떤 방식에 근거해서든 일종의 자의식(自意識)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존재를 단지 전기밥솥이나 냉장고처럼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당신이 처음에는 벌레였으나 윤회를 거듭하여 나중에는 불경에 해박한 승려의 지성에 필적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도 계속 주위에서 당신을 벌레 취급한다면 과연 부처님 마음으로 마냥 관대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로봇이 진화를 거듭하다보면 금속이 아니라 유기체와 통합되거나 아예 단백질 기반의 인공생명으로 탈바꿈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른바 하이테크와 바이오테크의 결합이다. 로봇은 외형적으로나 지적(知的)으로나 끊임없이 환골탈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에게 너희들은 그래봤자 쿤타킨테* 의 자식들이라고 우기는 억지와 뭐가 다르겠는가.

*부가설명 : 쿤타킨테는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P. 헤일리(Alex P. Haley)의 장편소설 <뿌리 Roots; 1976년>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아프리카인이었으나 백인 노예상인들에게 잡혀 미국으로 건너와 노예생활을 하며 모진 고초를 겪는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할까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로봇이 실제로 인간 못지않은 단계에 도달한다면 노예에서 해방시켜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이언 M. 뱅크(Iain M. Banks)의 과학소설 <컬처시리즈 The Culture Series>는 바로 그러한 상생의 유토피아를 무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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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M. 뱅크(Iain M. Banks)의 과학소설 ‘컬처시리즈 The Culture Series’ / Youtube 홍보동영상>

 여기서는 인간보다 지능이 훨씬 앞서는 인공지능들과 인간보다 완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한 로봇들이 인류를 위해 물질적 잉여사회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인간들은 이 기계지성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인격으로 존중한다. 투표권은 물론이고 생명의 존엄성 또한 똑같이 인정받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느 사회에서나 자신이 기여하는 만큼 대접받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뒤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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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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