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 SF작가 미래상상 ‘평행우주 속 마법?’

마법이 물리법칙상 통용되는 또 다른 평행우주가 있다면?

환타지나 <아더 왕 이야기>처럼 고대신화를 다룬 소설과 만화 그리고 영화에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심지어 아서왕의 든든한 멘토인 멀린이나 독일의 대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허리춤에 찬 신비한 벨트에서 샘솟는 힘으로 건장한 장정들을 일당백으로 제압하는 아이슬란드 여왕 브룬힐트처럼 강력한 마법을 적재적소에 써먹는 캐릭터들이 해당 이야기에서 꽤 비중 있는 조연을 맡기도 한다. 다만 이들이 펼치는 매력적이되 환상적인 마법이 실은 죄다 상상 속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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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 이야기 /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하지만 우리의 우주와 물리법칙이 다소 혹은 꽤 많이 다른, 이웃의 평행우주에서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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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질지 모른다. 예를 들어 빅뱅과 동시에 태어난 한 우주의 초기 조건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조건과 사뭇 다르다고 가정해보자. 과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힘이 중력과 전자기력 그리고 핵력(강력, 약력)의 4가지라고 본다. 만일 어떤 우주가 탄생할 때 유독 핵력이 우리 우주보다 약하다면 아예 전자끼리 결합할 수가 없어 항성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 결과 이 우주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생명체라곤 구경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핵력이 너무 강해도 좋지 않다. 항성의 수명이 너무 짧아져 이 또한 생명체가 생기기에 그리 유리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 대부분을 구성하는 탄소 분자는 뜨거운 별의 깊숙한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탄소와 철 같은 무거운 원소들은 별이 최후의 순간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때 우주 곳곳으로 흩어져 이중 일부가 행성에 안착하여 생명의 골격을 형성한다.*)
* 부가설명 : 물론 모든 별이 초신성 폭발을 하는 것은 아니며 질량이 태양의 20배 이상 되는 경우가 주로 해당된다.

평행우주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가설은 우주팽창(빅뱅)이론에 입각한 어버이 우주와 자식 우주, 다중우주론(Multivers theory)에 따른 복수우주 그리고 양자역학 기반의 다세계 해석에 따른 복수우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 우주가 창조되건 간에 서로 물리적 기본성질이 다른 이웃우주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면 개중에는 도저히 우리 우주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물리법칙, 이를테면 마법 같은 것이 현실적으로 멀쩡하게 통용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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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과학소설 작가들은 이러한 여지를 간파하고 마법이 현존하는 물리법칙으로 적용되는 평행세계를 선보였으니 로벗 A.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장편 <마법주식회사 Magic, Inc.; 1940년>와 폴 앤더슨(Poul Anderson)의 연작단편 <혼돈 작전 시리즈 Operation Chaos; 1956~1969년>, 랜덜 개렛(Randall Garrett)의 연작 장단편 <다아시 경 시리즈 Lord Darcy series; 1964~1979년> 등이 대표적이다.

SF작가들의 미래상상을 통해 알아보는 평행우주 속 마법의 현실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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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벗 A.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장편 ‘마법주식회사 Magic, Inc.; 1940년’ / 이미지 출처 : www.lwcurrey.com>

<마법회사>의 무대는 오늘날의 현대 산업사회와 닮았지만 마법이 귀중한 생산자원이라 이것의 독과점을 둘러싸고 사회갈등이 첨예해지는 평행우주의 또 다른 지구다. 특기할 것은 마법이 사회적으로 실체가 있는 귀중한 생산자원인 만큼 마법이 비즈니스화(기업화) 된다는 사실이다. 즉 이 대체 지구(alternative Earth)에서는 마법사들이 ‘프로마법사 기구(機構)’와 ‘마법 회사’ 둘 중 하나에 소속되어야 합법적인 영업을 할 수 있고 의뢰인들 역시 마법사를 고용하려면 마치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이용하듯 비싼 수수료를 주고 이 단체들에 신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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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앤더슨(Poul Anderson)의 연작단편 ‘혼돈 작전 시리즈 Operation Chaos; 1956~1969년’ /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혼돈작전>의 평행우주는 하느님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을 뿐 아니라 주물용 쇠의 자기(磁氣)를 제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마법이 쓰이는 세상이다. 이 대안우주(alternate world)의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데 다만 미국의 교전상대국은 독일이 아니라 다시 부흥한 이슬람권의 칼리프 제국으로 바뀐다. 미국 영토에까지 쳐들어온 이슬람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이 세계에 실재하는 늑대인간과 마녀가 적군의 비밀병기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비밀병기란 다름 아니라 솔로몬 왕이 봉인한 병에서 풀려날 정령(genie)이다.

<다아시 경 시리즈>는 마법이 준(準)과학으로 통용되는 평행우주로 우리의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달라진 유럽을 무대로 민완수사관이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매력은 수사관인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일급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엄격한 원칙에 따라 구사되는 과학적인 마법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 대안세계에서 마법은 고등수학이 포함된 과학적인 수련으로서, 우리 세계의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정교한 이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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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마법의 위력이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재능을 타고 나야 할 뿐 아니라 그에 합당한 수련까지 겸비하여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은 마법사들은 광범위한 위력을 발휘한다. 한 마디로 이것은 마법 과학 이야기(magic science story)다.

이제까지 예로 든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마법의 특징은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쓰이는 우주라 해도 실행할 때 까다로운 규칙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마법이 쓰는 사람 기분 내키는 대로 운용될 수 있다면 해당 우주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인과율마저 무너져버리지 않겠는가. 이는 한 가지 교훈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흔히 환타지 문학이나 영화에서 마법을 쓰고자 하면 그에 상응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과학소설 작가들이 생각해본 논리적으로 있을 법한 마법의 우주에서도 마법을 쓰려면 그러한 시도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특정한 규칙을 충실히 준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우주이건 마법을 일으킬 수 있는 우주이건 간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어떤 우주이건 살아가는 삶의 본질이란 측면에서는 서로 공평한 셈 아닌가.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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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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