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SF작가의 상상! 부처가 재림한다면?

매년 음력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모니는 중생에게 자비(慈悲)를 베푸는 동시에 스스로는 해탈(解脫)에 이르는 모범을 보인 후 기원전 483년 경 열반(涅槃)에 들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여기서 한 가지 엉뚱한 가정을 해보자. 성서에서는 세상이 종말에 이르면 예수가 재림하여 하느님을 충실히 믿어온 예쁜이들은 구원하고 나머지 밉상들은 지옥으로 내치는 최후의 종교재판을 할 것이라 한다. 만일 부처가 다시 이 세상에 재림(再臨)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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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기본사상을 고려할 때, 적어도 예수처럼 이분법적 잣대로 사람을 구분하지는 않을 듯하다. (참고 삼아, 필자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다만 종교 교리의 특성상 그러한 인상을 받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산업사회에서 각박하게 살아온 현대인들이 어느 날 불현듯 다시 현신(現身)한 부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남을 내 몸과 같이 여기고 생로병사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가게 될까?

이에 답하기 전에 이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따져보려면 실제로 부처를 어떻게 재림하게 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다만 먼저 감안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는 요한이라는 제자의 입을 빌려 일찌감치 재림하겠다는 예고편을 띄웠지만, 부처는 열반에 들면서 오히려 살아생전의 미련마저 깨끗이 비웠으니 재림을 약속하지도 그럴 의사도 없었다는 점이다. 대신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을 믿으니 이 개념에 따르면 후세에 또 다른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태어날지 모른다. 왜 석가모니의 재림이 아니라 또 다른 석가모니인가? 불교사상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전생(轉生)의 업보를 안고 산다. 벌레이든 사람이든 그 업보가 사라질 때까지 윤회해야 하는데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부처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재림이다. 불교 기반의 우주 작동 시스템이 원래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가. 석가모니는 신(우주의 창조주) 혹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그저 모범이 되는 선각자에 불과하기에 우주의 법칙을 임의로 바꿀 수는 없을 터이다.

또 다른 석가모니를 기다리는 것 또한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스케줄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할 때, 다시 말해 이 시대와 사회가 믿고 의지할 만한 영적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할 때 이 세상에 오셔야 할 텐데 과연 그 때가 언제 어느 때란 말인가? 기존의 석가모니 경우에는 모두 약 250번의 윤회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그중에는 사람뿐 아니라 징그러운 벌레로 축생(畜生)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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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차츰 인고(忍苦)의 노력을 거쳐 완벽한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울러 누구나 250번만 윤회하면 석가모니처럼 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어떤 이는 그 갑절의 갑절만큼 윤회해도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의 수준이 오십보백보일 터이고, 또 어떤 이는 영원히 축생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짓만 골라하며 생을 반복할지 모른다.

요행히 기존의 석가모니만큼 윤회하면 득도(得道)할 수 있는 새로운 석가모니가 태어날 가능성이 장차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앞으로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 250번의 윤회가 힌트다. 석가모니가 살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40~50세 사이였다. (석가모니가 80세까지 산 것은 이례적이다.) 당시 1세대의 평균 수명을 어림잡아 45세로 잡으면, 250세대는 약 11,250년이 된다. 2015년 현재 석가모니가 돌아가신지 고작 2,500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인류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석가모니에 견줄만한 인재가 자주 태어나기는 실로 어려운 듯하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므로 이러한 범주에서 제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묵묵히 기다릴 경우 또 다른 석가모니가 새로 태어나기까지는 최대한 8,750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물론 이 계산은 모수가 기존의 석가모니 사례 1건 밖에 없으므로 통계학적 대표성이 떨어져 단지 참고자료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석가모니가 태어나길 무작정 고대하다가는 인류가 그새 이미 다른 종으로 진화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기존 석가모니는 윤회할 수 없고 새로운 석가모니 또한 언제 윤회할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면 우리의 손으로 이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SF적인 감수성으로 일단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들은 당장은 어렵지만 관련 과학기술이 발달을 거듭하다 보면 언제고 가능해질지 모른다.

첫 번째는 DNA 복원이다. 전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한 할리웃 영화 <주라기 공원>을 기억하는 이라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DNA를 추출하자면 세포샘플이 있어야 하는데, 부처의 경우에는 사리(舍利)를 남겼다. 사리는 고인의 몸을 불에 태우고 남은 유골 가운데 구슬처럼 생긴 것을 일컫는다.

특성

이것의 문제는 화장(火葬)할 때 900~1,200도의 고온이 1시간가량 지속되므로 생체 DNA 구조가 파괴되거나 심하게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진신사리로 믿어지는 것들 가운데 DNA 보존상태가 완벽한 샘플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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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를 통해 DNA를 구할 수 없다면, 두 번째는 타임머신을 타고 석가모니 생전의 시대로 찾아가 머리카락을 얻어오는 것이다. 취지만 훌륭하다면 석가모니가 선뜻 머리털 몇 가닥을 내어주실지 모른다.

사리이건 머리카락이건 제대로 정품(!) DNA를 구해 석가모니를 이 시대에 복제해낸다 해도 아직 문제가 남는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냥 21세기 아스팔트 도시에서 과학자들 손에 고아로 자라난다면 과연 이 복제인간이 장성하여 기원전 5세기의 성자(聖者)와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현인이 되리라는 보장이 100% 있을까? 대리 부모에 위탁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어쨌거나 고타마 싯타르타의 성장환경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싯타르타는 오늘날 네팔 지방에 해당하는 고대 인도의 소국에서 왕위를 이을 왕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지배할 ‘왕 중의 왕’이 되어주길 원하는 왕실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름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인생의 선택을 했다. 왕이 되어 전쟁하며 이웃나라들과 콩 볶아 봤자 쉽게 이기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승승장구한다 한들 평생 전쟁터를 누비고 다녀야 한다. 대신 싯타르타는 정치군사 부문이 아니라 영적(靈的) 차원의 지도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런 맥락은 예수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유대인 사회에 메시아로 급부상할 때에도 열심당원들은 그가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무력을 앞세워 오늘날의 이스라엘 같은 군사강국을 만들어주길 열망했다.) 이 전략은 주효하여 부처의 사후 몇 백 년 간 인도의 상당지역에서 불교가 힌두교를 몰아내고 융성했다.

다시 말해 석가모니는 명색이 일국의 왕자였고 당시로서는 일류교육을 받았으나 생로병사와 같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얻는’ 경지에 올랐다. 그의 복제인간에게 이와 거의 유사한 사회화 조건을 제공할 수 있을까? 혹여 이 부분에서의 크고 작은 차이가 성장과정에 영향을 주어 복제인간은 사상가가 아니라 전혀 다른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평범하게 잊혀지는 사람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혈통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타고난 유전자를 속일 수 없다며 좋은 씨앗은 어떤 땅에 심어도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과학소설 장편 <낯선 땅의 이방인 Stranger in Strange Land>이 그러한 예를 뒷받침한다. 우리에 비하면 아주 도덕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화성인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아이가 지구에 돌아온다. 몸은 인간이지만 머리 속은 화성인에 가까운 그는 현대 산업사회의 말초적인 문명에 잠시 유혹되기는 하나 결국 자신이 뜻한 바대로 길을 간 끝에 순교한다.

복제인간이 과연 기대한 대로의 성자로 자라날지에 대해 걱정이 된다면 이러한 걱정 모두를 날려버릴 마지막 대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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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석가모니를 직접 현대를 모셔오는 것이다. 머리카락 갖고 씨름하는 대신 직접 석가모니가 일정 기간 방문해서 미래의 중생 역시 구원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면 감동하여 찾아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럼 만사 끝일까? 석가모니가 21세기에 찾아오셔서 물질문명이 얼마나 발달하건 간에 바뀌지 않는 인간의 근본과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면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현세의 물질주의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눈 녹듯이 사라질까?

필자는 오래된 DNA의 복제나 타임머신 같은 방법론은 언제고 실현될지 모르지만 석가모니라 한들 속세에 찌든 사람들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석가모니를 적대시할 우려가 높은 세력이 기존의 불교종단이다. 지난 수천 년의 동서양 역사가 보여주듯이 종교는 권력이며 고도의 정치행위 중 일부다. 대대로 기득권을 누려온 전세계 불교계 앞에 석가모니가 현신하여 “원래 내 의도는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라는 뜻이었다…”라는 식으로 설법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반신도들은 감읍하여 눈물을 왈칵 쏟을지 모르나, 불교계의 고위지도자들은 미스터리한 사내가 시간여행자의 손에 이끌려 와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콩이야 팥이야 한다면 ‘네, 네!’하며 연신 허리를 굽실댈까?

지난 천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황이 고도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지 신이나 예수로부터 선택받은 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리저리 종파가 갈라지고 종파와 종단 간에 이해가 충돌하는 불교계라 한들 오십보백보 아니겠는가. 아마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다시 재림하여 (성전 내 장사치들의 좌판을 뒤엎은 성서에서의 일화와 같이) 기존 기독교계의 부조리와 문제들을 정면하고 비판하고 나선다면 아마 대부분의 기성 기독교 교단으로부터 적그리스도 취급을 받으며 파문당할지도 모른다. 그 만큼 오늘날의 사회는 석가모니나 예수가 살던 사회만큼 단순하지도 상대적으로 순수하지도 않다. 현대의 우리는 더 많이 의심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과연 이러한 자들을 석가모니나 예수가 말씀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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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2 thoughts on “고장원SF작가의 상상! 부처가 재림한다면?

  1. ㅎㅎ
    약간 엉뚱한 상상이지만 부처님의 재림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 우선되는 의문이다.
    그 다음에 재림이 이었다고 증명되면 그땐 부처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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