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신> 그녀는 예뻤다, 배우 황정음

미끈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 뭘 하나 걸쳐 입어도 스타일리시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외모. 보통 드라마 여주인공이라고 하면 그런 모습을 상상하게 되죠. 그런데 요즘 정반대인, 예쁘지 않은 여주인공이 안방극장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 김혜진이죠. 배우 황정음이 연기하는 김혜진은 시쳇말로 ‘폭탄’입니다. 주근깨와 홍조 가득한 얼굴에 폭탄맞은 듯한 머리, 외모뿐 아니라 내세울만한 변변한 ‘스펙’도 없습니다.

<그녀는 예뻤다> 제목처럼 그녀는 과거에 예뻤습니다. 또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 시절 첫사랑을 십수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이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를 이끌어가는 주된 줄기입니다.

예쁘지 않은 여주인공의 매력에 시청자들이 푹 빠져들었던 대표적 드라마로는 2005년 방송됐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 있었습니다. 여주인공이 예쁜 것이 당연시되는 무대에서 이런 드라마가 사랑을 받는 것은 아마도 공감대의 밀도와 깊이 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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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장면들. 제공 MBC.>

못생긴, 혹은 못생긴 것으로 설정된 주인공들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못생겼을 뿐 아니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으면서 늘상 이리저리 치이는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 이전에도 이같은 캔디형 캐릭터는 흔했지만 지금 김혜진이 더 각광받는 것은 아마 이 시대 많은 청춘들의 자화상을 그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힘들게 대학을 마쳤고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 끝에 힘들게 겨우 얻은 자리는 잡지사의 인턴입니다. 그마저도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내일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죠. 연애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렇지만 김혜진은 환경에 쉽게 기죽지 않습니다. 건강하면서도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 그녀에게 공감하는 시청자들을 열광하도록 만든 이유입니다.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이라는 캐릭터는 황정음이라는 배우를 만나 더 큰 생명력을 부여받습니다. 사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에 그가 맡았던 비슷한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2009년 방송됐던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그는 지방대 휴학생 ‘황정음’을 연기했습니다. 극중 ‘서운대’ 학생이던 그를 서울대로 착각한 학부모 때문에 과외교사로 채용된다는 설정이었죠. 그는 이 시트콤을 통해 몸개그를 마다않고 망가지는 연기, 톡톡 튀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면서 신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배우 황정음으로 그를 떠올리겠지만 원래 그는 2000년대 초반 걸그룹 슈가 멤버로 데뷔했습니다. 당시만해도 아유미라는 멤버에 가려 대중들에게 이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고 오랜시간 무명에 가깝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7년 드라마 <사랑하는 사람아>를 통해 연기자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나 ‘발연기’를 한다는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지요. 이어 <겨울새> <에덴의 동쪽> 등에서도 이렇다할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에게 <지붕뚫고 하이킥>은 행운의 여신같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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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한 장면  제공 MBC>

사실 이 작품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반짝 스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시트콤에서 그가 연기했던 극중 ‘황정음’은 자연인 황정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캐릭터였기 때문이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인기를 바탕으로 그가 묵직하고 호흡이 긴 정극 <자이언트>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걱정과 우려를 쏟아냅니다. (이건 여담지만 우리 시청자들, 정말 캐스팅에 대한 관심 혹은 간섭이 장난 아니긴 하죠)

드라마 초기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혹평에 시달리던 황정음의 근성과 집념은 드라마의 진행과 함께 나타납니다. 발성이나 발음, 연기력 등 모든 면에서 외적인 변화와 발전을 보여준 것이죠. 매의 눈 같은 시청자들 역시 그의 노력과 성장을 지켜보며 그를 연기자 황정음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연기를 했으나 늘상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며 연기력에 큰 변화가 없는 배우들이 꽤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아마도 그의 변화와 노력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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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골든 타임의 한장면 제공 MBC>

어쨌거나 짧은 기간동안 그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라는 이름을 얻기에 이릅니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방영된 그의 출연작 대부분은 시청률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시청자들의 믿음에 앞서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믿고 작품속에 자신을 내맡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나 출연자들의 스타성 여부에 따라 드라마의 초기 흥행이나 입소문이 좌우되는 편인데 그의 최근 출연작들을 보면 그가 자신에 대해 갖는 믿음과 긍정의 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은숙 작가와 이민호 출연만으로도 화제가 됐던 <상속자들>과 맞붙은 <비밀>에 출연했던 그는 꼴찌로 출발했던 시청률을 1위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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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한장면 제공 KBS>

올 초 출연했던 <킬미 힐미> 역시 상대작은 현빈이 주연을 맡은 <하이드 지킬 나>였던데다 소재 역시 비슷했고 방송 전부터 캐스팅 난항으로 어려움을 겪었던터라 누구도 <킬미 힐미>의 선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수년전 <지붕뚫고 하이킥> 출연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병욱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황정음 역에는 다른 사람이 캐스팅돼 있었어요. 우연히 <우결>을 보는데 우리가 설정한 캐릭터하고 정말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던 황정음씨가 있었죠. 그런데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직접 불러서 오디션을 봤죠. 처음에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켜봤는데 연기력이 없더군요(웃음). 그래서 30분만 다시 이 배역에 대해 생각해보고 오라고 했어요. 그 사이에 훨씬 나아진 연기력을 보여주더군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과 그 결과물이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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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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