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이가 가능할까?

내 기억을 남에게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을까?

기억의 전이를 그린 SF영화
<6번째 날 The 6th Day; 2000년>이란 영화를 보면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연기하는 주인공이 자신과 빼다 박은 복제인간에게 모든 신분을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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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날 영화 포스터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미래사회에서는 어떤 생명이든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어 있지만 윤리/도덕적 문제 때문에 인간복제만은 금지되어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불순한 의도 탓에 불법복제가 자행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전자복제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원본 아놀드는 자신의 신분을 선뜻 증명하지 못하고 쫓기느라 급급해한다. 그 근본 이유는 단순히 육체를 복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머리 속의 기억 자체를 고스란히 복제해서 카피본에게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전제 아래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할리웃 영화 <기억운반자 조니 Johnny Mnemonic; 1995년>는 이보다 한술 더 뜨는데, 기억복제기술이 아예 공공연하게 상업화된 근미래를 그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예 자기의 머리 속에 작게 압축된 고용량 비밀정보를 업로드해서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비즈니스로 먹고 사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커누 리브스가 연기한 이 운반자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머리 속의 기억 일부를 제거하고 그 안에 디지털화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전뇌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마약을 국제밀수하기 위해 그것을 비닐 포장한 다음 장기나 항문에 숨겨 세관을 통과하려는 범죄조직의 업그레이드 판 같지 않은가. 공간이 제한된 전두엽에 자리를 차지하려다보니 운반 중인 정보는 높은 효율로 압축될 수밖에 없고 압축을 풀기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므로 운반자 자신도 내용이 뭔지 열어볼 수 없다. 이 영화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추억마저 삭제해야 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비극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처럼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또 다른 하드디스크로 자료를 옮기듯이, 한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경험과 추억 일체를 전혀 다른 사람의 머리 속에 이전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유전자 속의 기억정보를 공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을 추출해서 객관적으로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전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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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기억의 전이 방법론
사람 머리 속의 뇌세포 수는 140억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식별하여 보관과 전송이 용이한 디지털 정보로 바꾸는 기술이 과연 가능할까? 유기체 정보를 디지털화 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설사 그러한 기술이 구현된다 해도 현재의 데이터 압축률로는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수퍼 스페이션급 컴퓨터들을 줄지어 연결해도 용량이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 기반 기억정보의 공유를 통한 기억의 공유 가능성 여부는 일찍부터 해외학계에서 실험된 바 있다.

가장 초기 실험들로는 1950년대 중반 미국의 행동심리학자 제임스 맥코넬(James McConnell)과 1960년대 약물학자 조지스 웅가(Georges Ungar)가 각기 진행한 사례들이 유명하다. 맥코넬은 플라나리아를, 웅가는 쥐를 이용해서 훈련으로 학습한 특정 기억이 화학물질 형태로 저장되어 다른 개체에게 전이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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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자체는 둘 다 의외로 단순했다. 먼저 학습을 통해 특정 지식을 쌓았다고 생각되면 그 생물의 뇌에서 기억내용에 해당하는 물질을 뽑아내 다른 생물에 주입한 다음 그 효과가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먼저 쥐를 미로 속에서 훈련시켜 멀리 돌아가지 않고 먹이를 바로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을 익히게 한다. 이어 쥐의 뇌 성분을 추출해 다른 쥐 또는 심지어 다른 동물에게 주사한다. 그 다음 훈련을 아예 받지 않았거나 훈련량이 평균치보다 훨씬 밑돌아도 뇌 추출성분이 주입된 동물의 경우 곧바로 지름길을 이용하는지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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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플라나리아의 경우에는 빛에 조건화된 일정한 반응을 보이도록 훈련시킨 후 그 몸체를 반으로 잘랐다. 원래 플라나리아는 둘로 잘려도 서로 떨어진 조각 하나하나가 다시 온전한 완전체로 재생되는 성질이 있다. 놀라운 것은 뇌가 반으로 잘렸을 때는 물론이고 아예 뇌 없이 몸통만 분리되어도 플라나리아들은 애초의 훈련된 지식대로 반응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훈련된 플라나리아를 잘게 썰어 아직 훈련경험이 없는 다른 플라나리아들에게 먹인 결과, 미훈련 플라나리아들은 동족을 먹지 않은 녀석들보다 빛에 대해 1.5배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플라나리아는 실험대상으로는 너무 원시적이어서 훈련 수준 및 측정의 신뢰도에 이의가 계속 제기되었으며, 포유동물(쥐)을 상대로 한 연구는 1965 ~ 1975년 사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128차례 다시 재연한 결과, 그 중 23건이나 부정적 결과가 나와 논란을 야기 했다. 재연에 성공한 실험횟수가 아무리 많아도 부정적인 실험결과가 단 한 건이라도 나오면, 과학자 커뮤니티에서는 확고부동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웅가가 1977년 작고하고 나자 생체기반의 기억 이전 연구는 사양길에 들어섰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웅가가 이 분야에서 워낙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결과 다른 경쟁자들이 대부분 중도에 연구를 포기한 탓도 있고, 값비싼 실험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 까닭도 있다. (예컨대 웅가는 무려 17,000마리의 훈련받은 금붕어들의 목숨을 대가로 색깔 구분 기억과 관련된 뇌추출물 750g을 얻어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벌였다.)

기억의 전이를 다룬 과학소설
기억 이전의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은 불완전한 실험을 빌미로 뜨겁게 달궈졌을 뿐 학계에서 진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지 못한 까닭에 아직 정밀 실험과학의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기억 이전의 가능성 여부를 섣불리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과학소설에서는 벌써 이러한 기술의 상용화가 우리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있게 사색해보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리차드 K. 모건(Richard K. Morgan)의 <얼터드 카본 Altered Carbon; 2002년>과 리사 프라이스(Lissa Price)의 <스타터스 Starters; 2012년>가 비교적 최근 작품들 가운데 전형적인 예다. 두 작품은 하나 같이 부자 혹은 권력자가 가난한 사람의 몸을 사서 그 뇌에 자신의 의식을 다운로드해 인위적인 영생을 누리려 하는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타터스>에서는 <6번째 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복제인간 몸에, 그리고 심지어 <얼터드 카본>에서는 전혀 제3자의 몸에 이처럼 불순한 시도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유전자가 같은 복제인간이라 해도 엄연히 자체의 고유인격과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 다른 인격이 주입되기 위해서는 먼저 신체제공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모든 기억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전면적인 기억의 전이는 영혼말살, 다시 말해 살인과 다름없는 짓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이 소설들에서 부자가 젊은이의 새로운 육체를 원하는 까닭은 자신이 죽음을 앞두거나 심한 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 아니라 단지 여러 몸을 입어보고 싶은 패션욕망 때문에 부자들은 마치 옷을 갈아입듯 가난한 자들의 몸을 변덕스레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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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전이 기술의 사회적 의미
과학은 늘 그렇듯이 동전의 양면을 지닌다. 잘 활용하면 약이 되고 의도가 불순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예컨대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에게 교과서와 참고서 내용을 알약 한 알로 단번에 머리 속에 우겨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꿈같은 일일까. 누구나 쉽게 이런 교육을 활용할 수 있다면 사회구조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개편을 겪으며 생산성과 효율성이 훨씬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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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정보나 기억을 또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옮기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수요는 구구단 외우기에 진저리 치는 초등학생에서부터 무대에서 긴 대사를 읊어야 하는 배우, 국제법에 정통해야 하는 변호사 그리고 수많은 미세 계기를 조종해야 하는 우주비행사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으리라. 갈수록 전문성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방대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맨 땅에 새로 공부하지 않아도 주사 한 방으로 간편하게 자신의 뇌 속에 입력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매력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주사 한방이나 알약이 너무 편의적인 발상이라면 단기간의 약물요법이나 대뇌 시상하부에 대한 부분적인 외과시술은 어떠한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건 간에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기술이 제대로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하면 위에서 예로든 영화나 소설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원자력 에너지의 가치를 둘러싼 논란과 마찬가지로 기억의 전이 기술 또한 그것이 개발된다면 인간을 더욱 이롭게 할지, 아니면 인간 사회 내부의 질곡을 너무 심하게 비틀어놓을지 답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과학소설과 SF영화들이 하는 일은 그러한 우려의 가능성을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미리 내미는 것이다. 내일의 과학이 어디까지 가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한 과학이 어떻게 쓰이고 감시되어야 하는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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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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