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혁신> 난민의 역사 그리고 ‘쿠르디’

제2의 ‘난센 여권’을 기대하며
전 세계에 ‘난민의 비극’ 경종 울린 쿠르디 사진과 난민의 역사

최근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지중해 터키 해안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국적 3살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주검 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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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NN 기사
(http://edition.cnn.com/2015/09/02/europe/migration-crisis-boy-washed-ashore-in-turkey/>

청색 반바지에 빨간 티를 입은 쿠르디는 파도 옆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평온한 비극’ 앞에서 전 세계인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내전 중인 조국을 탈출한 뒤 망망대해에서 배가 뒤집히면서 엄마·형과 함께 목숨을 잃은 쿠르디 사진은,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을 인류 앞에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없는 아이의 죽음 앞에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난민 유입에 가장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던 영국이 난민 수용을 선언했고, 독일은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군 시설까지 동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프랑스 파리에서는 난민 환영 시위가 벌어졌고, 핀란드에서는 총리가 자신의 집을 난민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더군요.

사실 국제 사회에서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난 이들’을 일컫는 난민(refugee, 難民)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정치·경제적, 인종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전쟁이 일어나면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는 집단 망명객들(난민)이 수십만~수백만명씩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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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refugee(난민)’>

난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러시아 난민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귀족과 차르(황제) 편에서 싸운 백군 지휘관 등의 가족을 중심으로 100여만명이 러시아를 탈출합니다. 당시도 유럽은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대규모 난민 유입에 크게 당황합니다.

외국을 방문할 때는 모국(국적국) 정부가 여행자의 신분을 증명하며 방문국 정부에 법적인 보호를 부탁하는 문서인 여권(passport)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여권이 없으면 누군지 확인이 되지 않으니 법적인 지위를 인정받을 수도 없고, 구금 또는 추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러시아를 빠져나온 이들도 여권을 가지고 있었을 리 만무했습니다. 이에 국제연맹은 1921년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 출신 정치인 프리드리쇼프 난센을 러시아 난민 구제를 위한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하고, 이듬해 난센 주도로 제네바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러시아 난민들에게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명서를 발급해주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게 바로 ‘난센 여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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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난센여권’>

이후로도 난민은 끊임없이 생겨났습니다. 1930~40년대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200여만명이 독일을 빠져나와 전 세계로 흩어졌고, 1940년대 후반 인도-파키스탄 분쟁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거치면서도 대규모로 난민이 생겨났습니다.

러시아·미국의 침공을 받고 내전에 들어간 아프가니스탄, 종족 간 분쟁이 잦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 대규모 인종청소가 일어난 구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에서도 수십만~수백만명이 자신의 뜻에 반해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차별과 박해를 피해 이라크를 탈출한 쿠르드 난민, 쿠르디의 경우처럼 내전 중인 시리아를 뜬 시리아 난민 등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이들 중 일부에게도 ‘난센 여권’이 발급돼 합법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자리 잡도록 해줬습니다.

image007<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팔레스타인 전쟁’>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구호나 관심은 줄어가는 추세였습니다만, 3살 아이 쿠르디는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나라들의 전향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난민에 대한 일회성 관심이나 구호로 멈출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힘듭니다. 지금 세상은 누구에게나 살기 팍팍하고, 그런 환경은 사람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image009<이미지 출처 : 플리커 ‘Syrian refugee’(시리아 난민)>

그런 점에서 제2의 쿠르디를 막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나 대안을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0년가량 전에 등장했던 ‘난센 여권’처럼 난민들의 지위를 제도적·법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들 말입니다.

아울러, 쿠르디 사건은 한국사회에도 난민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님을 환기하는 계기가 된 듯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영국 등을 비판하는데, 사실 난민들에게 있어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영국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칩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인 2013년 7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이 시행돼 난민 신청자들에게 변호사·통역 지원 등을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난민법이 시행 첫해인 2013년 하반기 44명, 2014년 94명, 올해 1~5월 21명이 난민으로 인정됐습니다. 또 시리아난민 650여명이 한국 정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500여명이 인도적 체류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이 제공되고 직업을 가질 자유도 보장되지만, 6개월마다 연장 심사를 거쳐야 한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늦게나마 발을 뗐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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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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