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할까?(2부)

이차원 세계들이 존재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다.

1.이차원 세계는 바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평행우주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쓰는 거리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 이차원 세계는 아득히 멀리 있을 수도 있지만 바로 옆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원은 물리적 거리보다는 배열의 문제다. 비유를 들자면, 장소는 똑같지만 시간대가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차지하고 있어서 공간분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사람들은 종종 이웃한 차원들 사이에 통로가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블랙홀과 화이트홀 그리고 웜홀이 그러한 후보로 거론된다.

2.물리법칙이우리의 우주와 전혀 또는 부분적으로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는 빅뱅(우주탄생)의 초기조건이 다른 우주라면 그곳의 물리법칙은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4대 힘은 강력/약력/전자기력/중력이다. 아주 작은 막대자석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우리는 자기력의 세기를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중력은 어찌나 미미한지 행성이나 태양 같은 거대한 천체 정도 되어야 그 위력을 알아볼만하다. 달이 지구의 바다에 일으키는 밀물과 썰물이 좋은 예다. 그러나 위의 네 가지 힘들 가운데 가령 중력이 가장 센 우주가 있다면 그곳의 환경은 어떠할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세상에 동식물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과학소설에서 흥미로운 사고실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영국작가 스티븐 백스터(Stephen Baxter)의 장편 <뗏목 Raft; 1991년>에서는 중력이 유달리 강한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토착생물 뿐 아니라 이웃한 다른 우주에서 그곳으로 이주해 적응한 지적인 외래(外來)종족이 등장한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루디 러커(Rudy Rucker)의 장편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 사나이 Master of Space and Time; 1985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초기조건을 임의로 바꾸다 보니 초극미의 세계인 플랑크 단위(10의 마이너스 33승 크기)에서나 제한적으로 가능한 초자연적인 물리법칙이 우리의 일상세계를 지배하게 된 상황을 그린다. 그 바람에 우리 우주가 여러 평행우주들과 이어지면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외계 괴물들이 지구를 덮쳐 대혼란으로 몰아간다.

심지어 우리와 이웃하고 있지만 물리조건이 다른 평행우주들 가운데에는 마법이 멀쩡한 물리법칙으로 통용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핏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확률 상 불가능하지는 않다. 평행우주가 거의 무한한 수만큼 존재하고 각각의 우주마다 고유한 물리법칙을 지녔다면 어디엔가 그런 우주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그렇다 해서 마법을 기분 내키는 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나름의 법칙과 규칙에 의해 효력을 발휘한다고 보는 편이 맞으리라. 로벗 A.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마법주식회사 Magic, Inc.; 1940년>와 폴 앤더슨(Poul Anderson)의 <혼돈 작전 시리즈 Operation Chaos; 1956~1969년>, 랜덜 개렛(Randall Garrett)의 <다아시 경 시리즈 Lord Darcy series; 1964~1979년>1),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의 <앰버 연대기 Amber Chronicles; 1970~1991년>와 <체인질링 Changeling; 1980년> 그리고 닐 게이먼(Neil Gaiman)과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aves)가 공동 창작한 <인터월드 Interworld; 2007년> 같은 과학소설들은 모두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씌어진 작품들이다.

경사도가 더 완만한 지점을 찾아 가장자리를 따라간 그들은 별안간 이미 들어선 곳보다 훨씬 더 중력이 무거운 지대에 다다랐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몸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참담할 지경으로 짐이 두 사람 위를 짓눌렀고 있는 대로 쥐어짜야 간신히 발을 뗄 수 있었다.

— 클락 애쉬튼 스미스의 <우연이 만난 이차원 세계> 영문판에서 발췌 번역

심지어 클락 애쉬튼 스미스(Clark Ashton Smith)의 단편 <우연히 만난 이차원 세계 The Dimension of Chance; 1932년>는 우리 우주와 물리법칙이 다르게 작용할 뿐 아니라 비좁은 골짜기 안에서 한 발짝만 떼도 중력의 크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가 하면 화약이나 비행기 연료가 점화되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이차원 세계를 무대로 한 모험담이다.

3.오리지널 세계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거울세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

앞의 휴 에버렛 3세의 다세계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우주와 아예 딴판인 우주보다는 우리와 오십보백보지만 털끝 하나만큼씩만 다른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인 과학소설들이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의 연작장편 <앰버 연대기 Amber Chronicles; 1970~1991년>와 로벗 A.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장편 <짐승의 수 The Number of the Beast; 1980년>다. <앰버 연대기>의 기본전제는 우주 삼라만상의 근간이 되는 오리지널 세계는 앰버뿐이고 나머지는 이것을 조금씩 변형 가감한 거울 세계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앰버의 왕족들은 이 거울 세계를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넘나든다. 한편 <짐승의 수>는 6차원 다원우주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중 한 평행세계는 영어 철자 ‘J’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우리 세계와 똑같다.

4.나와 거의 똑같지만 조금씩 다른 분신이 사는 세계들이 무한히 존재할 수 있다. 

오리지널 우주에서 갈라진 평행우주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면 각각의 우주에는 나와 거의 똑같지만 조금 차이가 있는 분신들 또한 무수히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닐 게이먼(Neil Gaiman)과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aves)의 장편 <인터월드 Interworld; 2007년>는 평행우주들에 존재하는 ‘나’의 분신들이 한데 모여 군단을 형성하고 악의 무리에 맞서는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다.

*     *       *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보자. 우리가 혜성충돌이나 핵전쟁 또는 환경재난으로부터 살아남으면서 과학기술을 한없이 발전시키게 된다면 언젠가 새로운 우주를 인공적으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되면 우주 탄생의 초기조건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여 앞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마법이 가능한 우주나 중력이 다른 어떤 힘보다 강력한 우주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리라. 이른바 우리 입 맛 대로 만드는 인공 미니우주의 탄생이다. 필립 호세 파머(Philip Jose Farmer)의 <층층이 쌓인 세계 시리즈 Tierworld series; 1965~1993년>와 스티븐 백스터의 <타임십>이 좋은 예다.

마음대로

<층층이 쌓인 세계 시리즈>에서는 인간처럼 생긴 우주의 창조주들이 우리에게는 신통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제각기 자기 취향대로 미니우주를 만든다. 각자의 취향대로 만들다보니 우주마다 고유한 물리법칙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우주에는 행성이 하나밖에 없고 주위를 작은 달 하나와 작은 태양 하나가 공전할 뿐이다. <타임십>에서 5천만년 후의 한 초고도문명은 빅뱅도 빅크런치도 생기지 않게 초기조건이 조정된 우주를 임의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우주를 만든 까닭은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환경의 부침에 영향 받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 질량이 임계치에 미치지 못하면 궁극에 가서 빅크런치로 종말을 맞을 것이다.) 한 마디로 창생은 있지만 종말은 없는 우주에 살겠다는 요량인 것이다.

어떤가? 다른 차원의 우주를 우리 취향대로 꼴라주할 수 있는 미래, 매력적이지 않은가? 선사시대 이래 자연을 정복해온 인류 앞에 궁극에 가서 남게 될 개조대상은 우주 자체가 될 것이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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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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