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Jeong_Yak-yong-678<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조선시대 후기 최고 실학자이자 개혁가입니다. 1762년 태어난 그는 1836년 74살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고을 수령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는 베트남의 국부(國父)인 호치민이 즐겨 읽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관료·토지소유·세금·신분·과거제 등 각종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와 형법서인 <흠흠신서> 등을 저술했습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나라를 어떻게 혁신할지 고민한 결과물들입니다.

다산은 보통의 유학자들과 달리 다방면에 관심이 있어 고문서의 진위를 고증한 <매씨상서평>, 홍역에 관한 의서인 <마과회통> 등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물체를 손쉽게 들어올릴 수 있는 거중기와 활차, 녹로(도르래), 고륜(바퀴달린 달구지) 등을 만들어낸 발명가이기도 했습니다.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산이었지만 그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대과에서 2등으로 합격한 뒤 지평, 교리, 경기도 암행어사, 부승지, 참의 등을 거치며 30대에 관료로 승승장구했으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세상을 뜨면서(1800년)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도였던 친형이 참형을 당했으며, 정약용 본인도 주변의 의심 속에 멀리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방대한 저술과 발명품 못지않게 다산은 오랜 유배생활로도 유명합니다. 정치인이자 관료였던 다산에게 귀양살이는 비할 바 없는 좌절이었겠지만, 개혁가이자 민본주의자로서 큰 업적을 쌓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다산은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에 자리잡은 뒤 1천여 권의 서적을 쌓아놓고 학문에 매진하고, 제자들을 길렀다고 합니다.

Untitled-1-678<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7년 만인 1818년 56살에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경기 광주)으로 돌아온 뒤에도 다산은 시골에 은거하며 자신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하는 저술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재능을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 천재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그가 사회 혁신에 관한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은 저술 작업과 후학 양성뿐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200권 가까운 분량(503권 182책)의 저서 모음집(<여유당집>)이 탄생합니다.

다산의 ‘시대와의 불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아이들을 차례대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다산은 금슬 좋은 부인과 사이에 6남3녀를 뒀는데, 이 가운데 무려 4남2녀를 병으로 잃어야만 했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갈 때마다 다산은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가을 난초 만개하여
성하고 성하더니 먼저 시들었구나
혼은 하늘에 올라가 희고 깨끗하여
꽃 아래에 놀고 있으리”

셋째인 아들 구장이 죽은 뒤 다산이 지은 시입니다. 10여 년 뒤, 험하고 실망스러운 세상이니 농사나 짓고 살라는 의미에서 농(農)이라고 이름 지어줬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유배지에서 전해 듣고는 “네 모습은 깎아놓은 듯이 빼어난데 코 왼쪽에 조그마한 검은 사마귀가 있고, 웃을 적에는 양쪽 송곳니가 뾰족하게 드러난다. 아아, 나는 오로지 네 모습만이 생각나 거짓없이 너에게 고하노라”는 제문을 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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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시련은 사람을 단련시킨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산은 삶을 보면 시련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할 바 없는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이겨내고 시대의 최고 지식인으로 자리매김되다니, 정녕 위대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훌륭하건 훌륭하지 않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살고 있을 겁니다.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질테지요. 하지만 그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겁니다. 오늘 따라 삶이 팍팍하게 느껴진다면, 다산의 삶을 생각해보며 심기일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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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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