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생’ 신드롬

tvN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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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제공>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주변에서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다 하면 온통 미생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온·오프라인 공간 가릴 것이 없습니다. 국내 드라마에 으레 나오기 마련인 빤한 러브라인도 없고 끝까지 관심을 갖게 할만한 대단한 비밀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중들, 특히 평범한 직장인들은 이 드라마에 확 빠져들고 있습니다.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청년 장그래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뒤 종합상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이 이야기는 일반적인 드라마 공식에 맞춰 보면 자칫 지루하거나 우울하게 그려질 수도 있습니다만 편견을 보기좋게 깨뜨렸습니다. 이미 큰 인기를 얻었던 원작 웹툰 역시 드라마의 상승세와 맞물려 판매부수도 수직상승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1. 처절한 현실에 대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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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제공>

많은 시청자들이 미생에 빠져 드는 이유는 바로 ‘내 이야기 같아서’ 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든 하지 않았든간에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을’의 현실은 실제로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을’의 삶이기도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채와 경력사원, 상사와 부하직원, 남자사원과 여자사원 등 직장 내에서의 다양한 인간관계와 권력구도, 갈등의 미세한 부분까지 드라마는 보여줍니다.

보통의 드라마가 어떤가요. 재벌과 신데렐라, 이사님이나 실장님으로 대변되는 상류층, 그도 아니면 전문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상상과 판타지 속의 그들만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저 평범하고 비루한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내 이야기, 내 동료의 이야기,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현실은 처절합니다. 피말리는 입사관문을 통과해야하고, 그렇게 고군분투해도 여전히 계약직이고, 정직원으로 입사해도 사내 입지와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빠듯한 월급봉투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 속에서 발견하면서 오히려 하루하루 버텨내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2. 완벽한 싱크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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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제공>

웹툰을 기반으로 한 이 드라마에는 무수한 ‘만찢남’들이 존재합니다. 만찢남은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남자라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원작이 있다보니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드라마화된 캐릭터의 비교는 불가피합니다. 원작과의 일치 정도를 말하는 ‘싱크로율’은 드라마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지요. <미생>은 그런 점에서 원작을 넘어서는 정도의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합니다. 웹툰을 보며 상상했던 이미지가 현실로 그대로 살아나온 듯, 오히려 더 생생하고 실감나는 캐릭터로 살아 움직입니다. 여기에는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됐음이 물론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오과장(이성민)과 장그래(임시완) 콤비의 연기는 드라마를 이끄는 강한 동력입니다. 원작자인 윤태호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성민과 임시완의 연기에 눈을 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베테랑 배우인 이성민씨의 연기력이야 정평이 났지만 아이돌 출신으로 이제 고작 배우 3년차인 임시완도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업3팀의 김대리(김대명)는 연기는 물론이고 외모까지도 그대로 만화에서 살아나온 듯해서 놀라게 되지요.

3. 신스틸러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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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미생 화면 캡처>

영업 3팀과 장그래의 입사동기 등 주요 출연진 외에도 이 드라마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오과장의 입사동기인 영업2팀 과장, 마초맨 마부장, 약삭빠른 자원팀 정과장, 속깊은 김부장, 후배 등쳐먹는 성대리, 냉철한 강대리 등 원인터내셔널 직원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실제 회사원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지요. 대부분 연극, 영화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온 이들의 호연은 드라마에 사실감을 불어넣습니다.

회별로 에피소드가 완결되는 구조이다보니 1~2회 정도만 출연하는 배우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출연하는 배우들도 주연 이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지요. 매회가 ‘신스틸러’의 향연인 셈입니다. 어디서 저런 배우가 나타났을까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6회에 출연했던 박대리역의 최귀화, 7회에 등장했던 재무부장 역의 황석정, 9~10회에 나온 박과장을 연기한 김희원, 11회에서 사장으로 분했던 남경읍까지 일일이 꼽기도 힘듭니다. 20회로 예정된 <미생>에는 앞으로도 존재감 있는 배우들의 출연이 이어질 예정이라 더 기대감을 줍니다.

4. 철저한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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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제공>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에 완벽한 연기력, 여기에 세심하고 뛰어난 디테일을 선보이는 연출력까지 더해졌습니다. ‘이런 인간 꼭 있다’ 싶을만큼 현실적인 캐릭터를 비롯해 피곤에 찌든 회사원의 헝클어진 헤어스타일, 사무실 비품 하나까지 허술한 구석이 없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무실은 실제로 한 종합상사의 사무실을 옮겨 놓은 것과 같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영문 무역서류, 지도, 연필꽂이, 포스트잇 등을 세심하게 배치했습니다. 누구나 책상 정리하는 스타일이 다르듯 책상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팩스와 전화벨 소리도 위치에 따라 강약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진은 언뜻 넘길 수 있는 서류 한장까지도 종합상사 직원들의 고증과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물감없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5. 그래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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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N 제공>

아무리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생>은 판타지적 요소가 심어져 있습니다. 실제 있을 법한 인물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영업 3팀’은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기댈 수 있는 대상입니다. 합리적이고 깨어있는 일벌레 오과장, 사람 좋고 일도 잘하는 김대리, 고졸 검정고시 출신임에도 천재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장그래로 구성된 3각 편대는 함께 일하고 싶은 이상적인 팀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시청자들은 이들이 난관을 해결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감동 위로를 받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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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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