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가스가 암 치료제로?

독가스와 혁신의 계기

최근 때 아닌 탄저균 논란으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미군이 실수로 탄저균을 오산에 위치한 미 공군기지로 보내 22명의 실험요원이 탄저균에 노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실수로 배송한 게 아니고, 오산기지에 오래 전부터 탄저균 실험실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국민들로서는 놀랍고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탄저균은 대표적인 생물학무기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연합군의 가축을 몰살시키려는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일본•독일•소련•영국 등이 경쟁적으로 실용화에 성공했죠.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 731부대도 탄저균 실험을 했더랬죠. 탄저균은 100kg을 대도시 상공에 뿌리면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한 물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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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생물학무기 가운데 탄저균이 유명하다면, 화학무기의 대표주자로는 겨자가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겨자냄새가 난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겨자가스(mustard gas)는 탄저균보다 좀더 일찍 만들어져 제1차 세계대전 때 이미 실전에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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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플리커>

눈과 피부, 점막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되면 해당 신체조직에 손상을 주고, 몇분 만에 세포변형이 이뤄져 여러 통증과 임상증상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노출된 피부는 물집(수포)으로 뒤덮이게 돼 당사자나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죠. 그런데 겨자가스 사용이 의학 분야 혁신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암 치료제 탄생비화

때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2월2일, 독일 공군 폭격기 100여대가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이탈리아 항구 바리를 공습했습니다. 바리항은 연합군 물자보급 요충지였는데, 이날 공습으로 미국과 영국의 함선 30여척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던 바리항은 초토화되다시피 합니다. 진주만 공급 다음으로 연합군에 큰 피해를 입힌 공습으로 역사에 기록된 당시 폭격으로 7000t급 화물선 17척이 바다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중 하나였던 존하비호에 500kg짜리 겨자폭탄이 무려 2000개나 실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폭탄이 터지면서 엄청난 양의 겨자가스가 바다와 공기 중으로 유출됐습니다. 하지만, 겨자가스에 오염된 물과 공기에 노출된 수많은 병사들과 민간인들은 이물질을 씻어내는 정도 조치만 취하고 말았답니다. 독일군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해 겨자가스폭탄을 만들어 유럽으로 옮기도록 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등 연합국 수뇌부가 이를 철저히 숨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바다에 빠졌던 이들은 이튿날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였고 눈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여론에 떠밀려 진상조사가 시작됐고, 알제리에 있던 군의학 전문가 군의관이 현지에 파견됩니다. 그는 600여명의 해군과 1000여명의 시민들의 상태를 살펴본 뒤 독가스에 노출된 결과임을 바로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겨자가스에 노출된 군인들에게서 보였던 것과 똑같은 증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상태가 심각한 일부는 목숨을 잃었고, 군의관(중령)은 생존자 가운데 상태가 심각한 80여명을 집중적으로 치료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들 모두 백혈구 수치가 매우 낮았던 것입니다. 겨자가스가 백혈구를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했겠죠. 현재 암 환자들에게 시행되고 있는 화학요법이 발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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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요법,항암치료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이후 더 많은 의사들은 연구에 나섰고 겨자가스의 일부 성분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병원들에서는 독가스 계열에 포함되는 여러 물질들이 항암요법에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독가스에서 암 치료제가 탄생할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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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

역사는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합니다. 또 비극이 희극이 되고, 희극이 비극이 되기도 하지요. 또 논리적인 인과과정으로 어떤 사태나 사건을 설명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우연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합니다. 독가스 사용이 불치병 치료법을 만들어낸 계기가 된 ‘겨자가스 사건’은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우연이 혁신을 이끌어낸 것이죠. 하지만, 이런 설명은 당시 겨자가스 유출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라는 기준에서는 발전의 디딤돌로 묘사될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할 뿐일테죠. 역사가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1kg으로 1만명의 목숨도 빼앗을 수 있는 엄청난 살상무기인 탄저균이 우리도 모른 채 이 땅에 머물고 있었다니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가뜩이나 메르스 때문에 공포감이 고조되고 있는데 말이죠. 부디 탄저균, 메르스 사건이 우리 사회의 안전 수준과 문화를 혁신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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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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