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또 흥행할 수 있을까?

박경은 기자의 문화 속 혁신 <다시 도전하는 ‘임성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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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BC 오로라 공주 화면 캡처>

막장드라마 하면 아마 임성한 작가를 떠올릴 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위키백과 한국판에 ‘막장드라마’를 검색하면  ‘막장드라마계의 대모’라는 설명이 붙은 임성한 작가가 나와 있기도 합니다.

우선 막장드라마가 무엇일까요.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복잡하게 꼬인 인물관계,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으로 눈길을 끌며 줄거리를 이어가는 그런 드라마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임작가 외에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 <아내의 유혹>과 <왔다 장보리> 등을 썼던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 자주 따라붙는 수식어이기도 하지요.

임작가는 1998년 <보고 또 보고>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당시 겹사돈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등장시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쓰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고, 시청률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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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BS 신기생뎐 화면 캡처>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아현동마님>, <보석비빔밥>, <신기생뎐>, <오로라공주> 등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섰습니다. 무당이나 기생, 승려 등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흔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설정과 상황전개를 보면 황당무계하고 비상식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등장인물이 귀신에 씌어 눈에서 레이저를 뿜기도 하고(신기생뎐), 개가 말을 하기도 합니다(오로라공주). 어디 이뿐인가요. “암세포도 생명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암환자도 등장하지요. 복근에 대고 빨래를 하는가 하면 며느리와 친딸 중 누구와 살지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배우들이 죽음으로 중도하차하는 방식은 더 황당합니다. 개그프로그램을 보다가 웃어서 죽고, 유체이탈로 죽고, 가스폭발로 죽고, 딸의 결혼식을 보러가다 알츠하이머로 죽기도 했죠. 지난해 <오로라공주>는 등장인물이 갑작스럽게 연이어 죽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반발과 분노를 샀습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이 게시판에 등장인물이 죽는다는 내용의 공지를 미리 띄우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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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BC 오로라 공주 화면 캡처>

그래도 임작가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상상을 전복하는 화젯거리를 던지며 자신의 아성을 구축했고,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길을 간다는 것이 그의 드라마에서 뚜렷이 읽혔지요. 드라마가 방송될 때면 항상 시끌시끌 했지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특유의 솜씨는 여전했고,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그의 드라마에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그의 드라마에 중독되는 것은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이나 작품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도대체 얼마나 갈데까지 가는가 하는 말초적인 궁금증과 호기심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임작가는 이같은 대중들의 특성을 간파했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잘 활용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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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BC 압구정 백야 화면 캡처>

최근 그의 신작 <압구정 백야>가 시작됐습니다. 방송 전 대중들은 그가 이번엔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올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난 뒤 대중들의 반응은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는 것 같습니다. 비구니와 무녀 차림으로 클럽을 찾는 여주인공이 클럽 무대에 올라 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엽기적인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피곤한 기시감으로 시청자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배우만 바뀐 전작 <오로라공주>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디테일한 설정까지 비슷비슷합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개와 대화를 나누고 ‘암세포’ 대사와 말풍선까지 그대로 등장했습니다.

창작자들의 자기복제는 곧잘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한번쯤 시도하는 것으로 화제가 될 수 있을 지 모를 파격과 자극이 지속적으로 복제된다는 것은 대중의 외면을 부르고 창작자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오로라공주>가 방송되던 당시 벌어졌던 작가 퇴출 청원운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대중의 피로감과 비난의 강도가 임계치에 다다랐음을 보여줬던 사례였습니다. <압구정백야>는 첫 방송에서 9.9%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이후 8% 초반으로 떨어져 동시간대 프로그램 중 가장 낮습니다.

뚝심과 자기복제는 분명 다릅니다. 120부작으로 예정된 이 드라마는 이제 시작 단계인데요. 임작가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 궁금해집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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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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