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에 시민의식을 더하다, 르네상스

메디치와 시민의 자유가 더해져 르네상스를 태동시키다.

흔히 중세를 일컬어 암흑기라 부르죠. 물론, 중세가 정말 한줌의 빛도 허락되지 않던 암울한 시대였던 것은 아닙니다. 중세엔 유럽 대학이 본격적으로 설립되는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이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유럽의 1,000년을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중세 이후 이어지는 시대의 찬란함이 이전 시대를 그야말로 ‘그림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피렌체로부터 시작된 그 빛을 우리는 「르네상스」라 부릅니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도나텔로, 단테,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 100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 예술가와 저명한 작가들이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 모여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의 탄생 원인을 한가지로 규정짓는 건 무모한 일입니다. 역사적 사건 대부분이 그러했듯 르네상스 역시 다양한 우연과 필연이 겹쳐 탄생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는 바로 메디치 가문과 시민의식입니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통치하는 피렌체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김상근 연세대 교수는 “메디치 가문을 이야기하지 않고 르네상스를 말하는 것은 강물이 굽이쳐 흘러내리지 않아도 넓은 바다가 존재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의 관계에 대해 이만큼 적절한 비유도 없을 것 같네요.

메디치 가문은 섬유업으로 돈을 모으고 금융업을 통해 유럽최고의 부호가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300여 년의 메디치 가문 역사에서 르네상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은 ‘코시모 데 메디치’와 ‘로렌초 데 메디치’입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메디치 가문이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인데요. 단지 그의 수완이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는 ‘신의 뜻’만이 지배하고 있던 중세시대에 플라톤 철학을 소개하며 ‘인간이라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앞서 소개한 코시모의 손자입니다. 1469년부터 1492년까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면서 르네상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죠. 그는 가문의 막대한 부를 할아버지가 개척한 플라톤 철학을 후원하는데 꾸준히 사용했고, 르네상스의 불꽃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양한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로렌초 때문에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탄생지가 될 수 있었고, 덕분에 미켈란젤로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 역시 자신의 저서를 로렌초 메디치에게 헌정했습니다. (당시엔 책이 매우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책을 손쉽게 구입해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은 그 책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들에게 헌정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시대는 한 두 명의 지도자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르네상스 태동을 위해 큰 공헌을 한 건 사실이지만 창조의 에너지는 그리 간단하게 만들어지진 않으니까요.

피렌체하면 메디치 가문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피렌체는 근본적으로 시민들이 이끌어 가던 ‘시민의 도시국가’ 였습니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고 풍요로운 부를 지닌 지도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사상적,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는 도래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당시 피렌체로 모여든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은 필요에 따라 길드를 조직하여 피렌체를 하나의 거대한 정치경제 공동체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배양하기 시작했죠. 피렌체 시민들은 법률적으로 차별을 받을 경우 공개 석상에서 ‘나는 피렌체 시민이다!’라고 외칠 권리가 있었고, 정부는 무조건 다시 조사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피렌체 시민의 권리와 의식수준은 높아졌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가들이 피렌체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당당히 예술로 표현하기 시작했죠. 이는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고 예술가들을 모이게 만드는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축적된 부를 언제 빛 볼지 모르는 사상과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후원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또한, 문예부흥에 다양한 투자를 한다고 모든 역사가 르네상스 같은 찬란한 시대로 이어졌던 것도 아니구요.

르네상스는 시민들의 높은 의식수준과 예술적 자유에 대한 갈망, 거기에 메디치의 전폭적 후원이 더해져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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