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혁신] 캠퍼스 드라마 변천사

 

■ 80년대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지금의 치즈인더트랩까지!

<치즈인더트랩>이라는 드라마, 요즘 많이 들어보셨죠?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근래 보기 힘들었던 캠퍼스 청춘 드라마입니다. 30대 후반 이상의 세대라면 어린 시절 꽤 많은 캠퍼스 청춘 드라마를 보고 자랐을 테지만 최근 십 수년간 캠퍼스 드라마는 좀체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캠퍼스 드라마에 40대 이상 여성들이 특히 열광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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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tvN치즈인더트랩>

표면적으로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달콤한 로맨스입니다. 어느 캠퍼스 드라마가 안 그랬겠느냐마는 푸릇한 캠퍼스에 일렁이는 풋풋한 낭만과 발랄한 젊음은 캠퍼스 드라마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청춘의 기억에 젖어들고 싶어 보게 된 이 드라마. 그런데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잔혹한 현실이 드라마 곳곳에 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지요. 풍문으로만 들었던 요즘 대학가의 모습과 대학생들의 고충, 어려움, 달라진 풍속도 말입니다. ‘우리 때가 나았다’ ‘요즘 애들은 어떻게 사나’ 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며 이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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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tvN치즈인더트랩>

몸이 녹아내릴 지경으로 해대도 등록금 대기엔 턱없이 부족한 아르바이트, 비싼 방값 때문에 왕복 4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통학, 해도 해도 끝없는 스펙쌓기와 학점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늘귀 같은 취업 문과 불투명한 미래. 드라마 속에 이 같은 현실묘사는 양념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마음 설레는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판타지를 자극하는 드라마임이 틀림없지만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이 같은 현실들에 오히려 마음이 멈춰 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수 십 년 전, 지금의 기성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보고 즐겼을 법한 캠퍼스 드라마들이 떠올랐습니다.

■ 대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80~90년대 청춘드라마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법한 캠퍼스 드라마는 80년대 중반에 방송됐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입니다. 캠퍼스 드라마의 원조랄 수 있는 이 드라마는 당시 대학생들보다는 오히려 중고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손창민, 최수종, 최재성, 최수지, 이미연 등 당대의 청춘스타들도 이 드라마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드라마가 그려낸 것은 제목처럼 가슴 설레는 청춘의 사랑이 피어나는 캠퍼스의 모습이었죠.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의대생, 미대생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의대나 미대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학과입니다. 청춘 드라마도 드물던 당시에 이런 설정들은 판타지의 감도를 극대화시키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엄혹하던 시절의 대학가 현실을 이 드라마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학가에 상주하던 사복경찰, 최루탄 가스의 흔적 대신 그저 자유롭고 여유가 넘치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연애사 외에는 이렇다 할 고민거리도 없는 대학생들의 모습만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무채색 안방극장에 알록달록 천연색을 입혔던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후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초반 나란히 선보였던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드라마 역시 당대 스타의 산실이었습니다. 이병헌, 박소현, 고소영, 장동건, 염정아 등이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됐지요. 이때도 캠퍼스와 이곳을 채운 젊음은 변함없이 싱그럽고 풋풋합니다. 청춘의 사랑과 우정, 여기에 가족과 미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이야기의 폭이 확장되었습니다. X세대로 지칭되는 ‘신인류’가 등장한 데다 경제적으로도 호황기였던 이 때는 청춘 드라마 역시 호황을 누렸습니다. 풍요로워진 현실이 반영됐고 극대화된 자유와 세련됨까지 더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그 시절 청소년들이 어른들로부터 무수히 들었던 “대학만 가면 된다” “대학만 입학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뜬구름 잡던 말은 이 같은 드라마를 통해 형상화됐습니다. 드라마 속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에 나타날 실체일 것이라는 환상은 오히려 공부에 매진하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으니까요.

20대 초반에 겪음 직한 갈등과 학업을 향한 치열한 고민 등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려낸 캠퍼스 드라마는 90년대 후반 방송됐던 <카이스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를 배경으로 펼쳐진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치열한 경쟁과 일상, 꿈, 우정의 서사는 대중성이나 완성도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 달콤하지만 씁쓸한 캠퍼스의 현실

캠퍼스 드라마가 막을 내렸던 것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입니다. 아마 마지막 작품은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였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후반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이어진 이 청춘 시트콤은 코믹하고 발랄하게 대학생의 삶을 풀어갔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침체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깊어진 불황의 그늘을 이 발랄한 시트콤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고시생으로 등장했던 신화 멤버 앤디의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한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외침은 참담한 현실을 반영하던 ‘웃픈’ 대사였죠. 청년들이 맞닥뜨린 이 같은 현실은 이후 캠퍼스 드라마의 실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캠퍼스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반가우면서도 아득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점에선 별다를 바 없지만 치열한 경쟁과 생존을 향해 내달려야 하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방황하고 좌절하는 청춘의 현실이 언뜻언뜻 읽히기 때문입니다.

해보고 싶었던 엉뚱한 일을 해보고, 원하는 것을 공부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설레는 연애도 해보는 것들. 과거에 캠퍼스에서 당연시 누릴법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지금 캠퍼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판타지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서글픈 아이러니인지 모르겠습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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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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