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의 이름에서 지진의 규모 ‘리히터’로

리히터 박사와 뒤늦게 찾은 ‘나의 길’

4월25일(현지시각)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네팔을 강타해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진앙지(진원 위 지표면 지점)가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진원(지진이 최초 발생한 곳) 깊이가 11.8km로 비교적 얕아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인구가 250만명에 이르는 카트만두의 건물 대부분이 벽돌과 흙으로 지어져 매몰 피해가 심각하더군요.

이렇듯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인 지진의 강도(규모)는 ‘리히터 규모’란 단위로 표시됩니다. 리히터 규모는 지진계에 기록된 지진파의 최대 진폭을 측정해 지진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고 나타낸 것입니다. 지진파의 진폭이 10배 증가할 때 리히터 규모 1이 증가하도록 표시하는데, 이때 지진 에너지는 32배가량 더 발생한다죠. 따라서 이번에 네팔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7.8 지진은 리히터 규모 6.8에 비해 32배 강력하고, 리히터 규모 5.8에 비해서는 1000배가량(32×32) 강력한 지진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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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균열이 간 모습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지진 측정 단위인 ‘리히터 규모’를 개발한 이는 미국의 지진학자 찰스 프랜시스 리히터 박사입니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언급할 수밖에 없게 만든 위대한 지진학자이지만, 그는 원래 지진학 전공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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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진학자 찰스 프랜시스 리히터 박사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칼텍(Cal-Tech, 캘리포니아대 공대)에서 이론물리학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갈 즈음이던 1927년, 지도교수가 “(교내) 지진 연구실에서 물리학자를 찾던데?”라고 던진 말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이론물리학 관련 일자리를 찾던 그는 이 얘기를 듣고 ‘내 전공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은 있잖아?(this was not my line, but was I at all interested?)’라며 지진 연구실 주임과 얘기를 나누게 됐답니다. 그 결과 지진 연구실에 임시로 자리를 잡게 됐고, 그렇게 지진학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훗날 그는 이때 에피소드를 상기하며 ‘정말 행복한 사고’(It was really a happy accident.)라고 회상합니다. 정년을 앞둔 1970년 5월 언론(AP통신)과 인터뷰에서도 “처음에는 지진학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지진 연구소에 고용되면서부터 지진 부문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나는 이론물리학자로서 일할 직장을 찾고 있었기에, 이(지진) 연구소에서의 일을 잠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더군요.

우연찮게 디딘 지진학의 세계에 매료된 그는 이듬해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딴 뒤에도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지진 연구소에 취업합니다. 이어 독일 출신 지진 학자이자 칼텍 교수였던 베노 구텐베르크와 함께 새로운 지진측정 방법을 연구하고, 1935년 이른바 ‘리히터 규모(Richter scale)’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모교인 칼텍 지진학 교수가 된 그는 1970년 은퇴한 뒤에도 지진 연구, 조사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지진은 단순한 연구대상 또는 직장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거실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지진파를 측정했는데, 지진계를 가리켜 ‘아이들’이라고 부르며 즐거워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외국 지진학자들의 논문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등을 배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은퇴를 했어도 지진 연구를 계속한다. 달라진 거라곤 월급이 안나오는 것 뿐”이라고 푸념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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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계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뒤늦게 맺어진 남녀를 두고 옛말에 ‘인연을 따로 있다’더니, 이쯤 되면 일이나 직업의 세계에서도 ‘따로 맺어둔 인연’이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사람이 전공을 바꿔 새로운 분야 연구에 즐거이 한 평생을 매진하고, 전 세계인들이 기억할만한 혁신적인 업적까지 남겼으니 말이죠.

돌이켜 보면, 리히터 박사가 역사에 남는 과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요인은 취업을 생각하던 시기 새로운 제안에 주저 없이 응하기로 호기심이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은 ‘내 진로는 정해졌어! 라고 생각할 순간, 그는 새로운 분야에 첫발을 딛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스스로에 대한 규정과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바로 옆을 지나가는 ‘진짜 인연’을 놓치고 내 안의 잠재력을 묵히고 사는 것은 아닐런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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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모습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지진이 발생한 네팔에서 사망자 숫자가 매일같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덜 가진 삶에 만족해하며 행복한 삶을 산다는 네팔 사람들에게 왜 이런 재난이 닥쳤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피해자들 한명이라도 더 구조되길 기도하며, 지금 이 순간 내 옆으로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인연’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런지요?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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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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