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혁신> 미국 도청 비결이 땅굴?

미국의 땅굴과 혁신적인 정보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 이른바 ‘신냉전’이 한창입니다.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두고 고위층들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주변 우방국 확보•결속을 위한 경쟁도 한창입니다. 최근엔 미 정보기관들의 수장인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미 연방인사관리처(OPM)해킹 사건과 관련해 “중국이 최우선 용의자”라고 밝히는 등 사이버 세상에서의 갈등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실 냉전의 원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가량 지속된 미국과 소련 사이 냉전입니다. 분단과 전쟁을 겪어야 했던 한국과 더불어 당시 냉전의 최전선으로는 독일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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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 출처 : 위키미디어>

특히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나뉘어있던 베를린에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영국SIS(비밀정보국•MI6), 소련의KGB(국가보안위원회), 이스라엘의 모사드, 동독 비밀경찰(슈타지) 등의 비밀요원들로 넘쳐났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던 당시 이들 각국의 정보요원들은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모으고, 상대방을 정탐하고, 기만했습니다. 이중스파이들도 넘쳐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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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출처 : 위키미디어>

역사 속 혁신! 미국의 정보취득 방법이 도청?
이런 상황에서 CIA는 1954년 초 SIS와 회의를 열어 새로운 정보취득 방법 논의를 시작합니다. CIA가 골드작전, SIS가 스톱워치작전으로 이름 붙인 이 작전은, 접경지역에서 동베를린 쪽으로 땅굴을 파고 내려가 소련군 통신망에 접속하는 무식하고도 대담한 방안이었습니다. 난민촌과 묘지 등이 들어서 있던 베를린 남부의 빈민촌 접경지역에 대형 창고가 세워졌고, 그 해 9월부터 본격적인 땅굴 굴착이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몇 달 동안 비밀 작업 끝에 동베를린 쪽으로 500m가량 땅굴을 파는데 성공했고, 이듬해 봄 지하수와 소음 관리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소련군 통신선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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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예시 이미지 / 출처 : 플리커>

도청을 위한 각종 기기가 설치됐고, 3개의 케이블을 통해 본국과 교신하던 100여대의 소련군 전신기와 전화기 통화내용은 고스란히 미군 테이프에 녹음됐습니다. 대담했던 작전은 일년이 조금 안된 1956년 4월 소련군에 발각돼 끝을 맞습니다. 소련군은 지하에 설치된 방대한 도청설비와 에어컨 등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맘 같아서는 땅굴을 타고 서베를린으로 쳐들어가 복수해주고 싶었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전면전으로 화전될 것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결국 언론과 정권 고위인사들에게 땅굴을 견학시키며 미국과 CIA를 비판하고 체제를 결속시키는데 활용하는 정도로 그치고 맙니다.

역사 속 혁신! 미국의 무식한(?) 도청의 결과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은 전체 무게가 20톤이 넘는 테이프 5만여 개에 이르는 분량의 통화내용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련이 실제 유럽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과 신형 무기였던 T-52전차의 문제점, 동독에서 활동하고 있던 소련 정보요원들의 정체 등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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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 출처 : 위키미디어>

당시는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만큼 핵무기를 쌓아둔 상태였고,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은 진보한 과학기술이 아니라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정보전에서 혁신적인 승리를 쟁취해냈습니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기발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겠죠. 이런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방면에서건 기술에 대한 과신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리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의 혁신을 두고 여러 평가가 많지만 애플의 진정한 경쟁력은 사람의 이해에 기초한 혁신적인 UI(사용자편의), 즉 발상의 새로움이 핵심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창의력은 허술해 보이는 것에서도 나올 수 있고, 꼭 남들보다 앞선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겠죠.


P.S.

당시 미국의 도청이 1년도 채 안돼 발각된 것은, 소련 스파이로 활동하던 영국정보부 요원의 밀고 때문이었습니다. 조지 블레이크라는 이 스파이는 한국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George Blake

<조지 블레이크 / 출처 : 플리커>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방첩부대에 근무했던 그는 1947년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웠고, 주한 대사관 부영사로 일하던 도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에 역류됩니다. 그 시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데다 “미국이 민간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보고 공산주의가 더 인간적이라는 믿음을 얻게 됐다”는 변절 이유를 설명했다죠. 1961년 정체가 발각돼 42년 형을 선고 받지만, IRA(아일랜드공화국군) 요원의 도움으로 5년 만에 탈옥해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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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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