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기자의 문화 속 혁신]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에 이야기가 더해져 대중들을 끌어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노래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멜로디가 좋거나 신나는 비트로 흥겨움을 더하거나, 혹은 최신 유행에 걸맞은 감각적 스타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또 가슴을 저미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연들로 청자를 붙드는 노래들도 있습니다. 한동안은 전자악기를 사용한 일렉트로닉 음악이, 또 한때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후크송이, 또 어떤 때는 복고적 감성을 자극하는 옛날 노래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가요계를 들여다보면 뚜렷한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노래가 발표됐고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이들 중 ‘이야깃거리’를 남긴 노래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심지어 노랫말이 실종됐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이돌 중심의 댄스음악이 가요계의 주류를 차지하다 보니 단편적인 이야기나 짧은 줄임말, 파편화된 감정표현, 의성어 수준의 무의미한 단어를 반복하며 가사 대부분을 채우는 노래가 많았습니다.

10, 20대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의 노래들, 또 이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지상파 방송의 음악프로그램들이 대중문화계 전면에 나섰고 기성세대가 누릴 수 있는 대중가요의 영역은 점점 그 자리가 작아졌지요. 자연히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도, 여러 계층에 골고루 불리는 노래도, 세대 간 함께 나눌 수 있는 노래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1, 2주간 음원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다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지는 노래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노래의 수명도 짧았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가요계에는 뚜렷한 변화의 흐름이 보입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노래도 여럿 있고 10대가 흥얼거리는 1980~90년대 가요도 있습니다. 곡에 대한 감상평이나 라디오에 보내는 신청곡 사연을 보면 “공감 가는 노랫말”이라며 노래가사를 언급하는 글도 꽤 눈에 띕니다. 이같은 변화의 바탕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가요를 즐기는 음악팬들이 단순한 멜로디나 분위기가 아닌, 노래가 갖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야기’는 노랫말 그 자체이기도 하고 노랫말을 풀어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혹은 노래와 가수를 둘러싼 외적 요인이 그 자체로 이야기되어 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s
<출처: 방송 캡쳐 화면>
최근 몇 달간 인기를 얻어온 곡들을 보면 구체적으로 체감됩니다. 올해 최고의 인기곡으로 꼽힐 ‘썸’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 탐색하는 단계의 남녀간 심리상태를 일컫는 신조어 ‘썸’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이 곡은 또래의 남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상황을 묘사했고 전개 방식도 상황극처럼 대사가 이어지는 등 연극적 내러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이같은 요소는 이전에 발표됐던 수많은 남녀 듀엣곡과 차별화되는 점입니다.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레이나와 래퍼 산이가 함께 부른 ‘한여름밤의 꿀’, 에이핑크 정은지와 허각이 함께 한 ‘이제 그만 싸우자’ 등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곡들 대부분도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GOD
<출처: 싸이더스 HQ>
A
<출처: YG엔터테인먼트>

가수가 가진 이야기도 대중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이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지오디와 악동뮤지션을 들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국민 아이돌로 불렸던 지오디는 9년 만에 재결합하면서 그 자체로 화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당시의 팬들을 위한 추억 팔이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연결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팬들은 팬들대로, 팬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료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며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여주며 사랑을 받은 십대 남매 ‘악동뮤지션’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들은 오디션 출연부터 데뷔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한국의 여느 청소년과 달리 몽골에서 보낸 수년간의 시간들은 이들의 노랫말과 음악에 신선한 이야깃거리와 생명력을 부여했지요.

U
<출처: 로엔엔터테인먼트>
아이유가 발표한 ‘너의 의미’ ‘나의 옛날 이야기’ 등 리메이크곡 역시 많은 이들을 아이유의 음악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고작 스물 한살인 가수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발표돼 인기를 얻었던 곡들에 집중하며 이를 현재의 감성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옛 노래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어떤 음악이, 어떤 이야기가 우리들을 감동시킬까요.

 

 

 

 

박경은 기자

|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