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기자의 문화 속 혁신] : 영화 <명량>


올 여름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주역은 400여 년 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이순신 장군입니다. 올 들어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던 극장가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은 한국영화의 신기록을 새롭게 써가고 있습니다. 국내에 개봉된 영화 사상 역대 개봉일 최다 관객 수, 평일 최다 관객 수 등을 기록하며 하루 100만 관객 시대를 연 작품이 됐습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첫 1,000만 관객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역대 최다 관객 동원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출판계에도 이순신 장군의 삶을 조명하는 책들이 각광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순신 신드롬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여 년 전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가 발간되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던 당시에도 이순신 열풍이 불면서 창작오페라, 만화, 게임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반복적으로 이순신 신드롬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 시대에 찾아볼 수 없는 리더십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는 갈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단순한 불세출의 영웅에 대한 추종이라면 이처럼 반복적으로, 강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중들은 단순한 영웅담에 기대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현재 사회에 결여돼 있는 가치와 덕목을 그가 보여줬기 때문일 겁니다. 비참한 현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굴욕을 당하고 인간적 고뇌와 번민에 휩싸입니다. 그의 이 같은 상황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질감과 공감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들은 그의 모습과 결단을 통해 앞으로 나가야 할 지향점과 방향성을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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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에는 그가 가졌던 가치와 덕목이 묵직하게 펼쳐집니다. 지략과 책임감, 결단력, 애민정신 등 일일이 꼽을 수 있겠지만 묶을 수 있는 말은 인간적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그의 리더십 속에는 혁신의 코드가 녹아 있습니다. 현실적 환경, 상황 논리, 대세는 그를 압박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여기에 쓸려가지 않습니다. 12대 330이라는 막다른 환경에 굴하는 대신 최선의 답을, 승리의 묘수를 찾아내게 만든 것은 생각의 혁신입니다.

영화 전체를 꿰는 화두는 두려움입니다. 전반부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조선 수군(물론 여기에는 이순신 자신도 포함됩니다)과 백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와 실체가, 후반부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용기로 바꿔 이용하는지가 묘사됩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 뜬구름 잡는 듯 막막하기는 이 과제를 받아 든 이순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뇌 끝에 그가 내린 해답은 ‘사즉생’ 입니다. 그가 탄 대장선은 330척의 왜선을 마주하고 홀로 선봉에 나섭니다. 죽기를 각오한 그는 직접 칼을 뽑아 들고 백병전에 몸을 던집니다. 자욱한 포연과 치열한 전투 끝에 그와 그가 탄 배는 살아남습니다. 조선 수군과 백성들의 두려움과 절망이 용기와 희망으로 바뀌는 지점도 여기서부터 입니다. 뒤로 빠져 있던 11척의 배는 천군만마의 힘을 얻어 적을 향해 나섭니다. 바다가 품은 회오리를 이용하는 절묘한 이순신의 전략은 적진을 뒤흔듭니다. 자칫 회오리에 함께 휩쓸려 갈 뻔한 대장선을 위기에서 끌어내는 것은 이순신을 통해 감동과 용기를 얻은 민초들의 소박한 조각배였습니다. 목선 12척으로 완전 무장한 왜선 330척을 막아낸 ‘명량대첩’의 기적입니다.


죽고자 하면 산다는 그의 혁신적인 발상과 결단. 이는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남아서 뜨거운 힘을 줍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금도 그를 붙잡고 좇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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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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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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