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혁신> 병역기피, 100년 전에도?

역사혁신 속 병역기피, 그 오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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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동안 국내 체육계에서 화제가 됐던 프로골퍼 배상문 선수의 군입대 문제가 일단락됐습니다. 국외여행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배 선수와 이를 불허한 병무청의 법정다툼에서 법원이 병무청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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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병무청 / 이미지출처 : 위키미디어>

재판부(대구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연우)는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은 누구나 소중한데 배상문의 경우만 입영을 미뤄서 내년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시킨다면 형평성의 원칙이 더 훼손될 것”이라고 밝혔다죠. 배 선수 쪽도 “법원의 판결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법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니 모쪼록 다행입니다.

알다시피 유명인 병역기피 문제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우리사회를 들썩거리게 한 ‘뜨거운 감자’입니다. 유력 대선후보가 아들 병역기피 논란 속에서 낙마했으며, 미국 국적인 유명 가수가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가 평생 입국이 금지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배우는 이를 계기로 국민배우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종종 있는 고위 공직자들 인사청문회 단골 메뉴도 본인 또는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만 한 게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상민들은 병역의무가 있어 군대에 가거나 군포를 내야 했지만 그 위에 군림하는 양반들은 병역의무가 없는 나라가 조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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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혁신 속 새로운 모습의 병역기피?

실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잖은 백성들이 왜군 편에 섰다고 합니다. 선조가 한양을 탈출한 직후 궁궐에 들어가 전각과 노비문서를 불태운 것은 왜군이 아니라 노비 등 조선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권한과 책임이 따로 노는, 지배계층에만 좋은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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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 / 이미지출처 : 위키미디어>

고려의 역사혁신 속에도 병역기피가?
덜 알려져 있지만, 고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윤관의 동북 9성 개척’이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는지요? ‘서희의 강동 6주 획득’과 더불어 고려가 북방 영토를 넓힌 대표적인 사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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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반 윤관장군 / 이미지출처 : 위키미디어>

여진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 고려 15대왕 숙종은 이를 국치(國恥)로 여겨 설욕을 다짐했습니다. 여진 기병을 제압하기 위해 귀족부터 서리, 승려, 상인, 노예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별무반을 구성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 결과, 숙종의 아들인 예종 2년(1107년) 윤관을 사령관으로 한 17만 대군이 여진 정벌에 나섰고, 결국 현재 함경도 일대 100여개 여진 촌락을 공략해 여진족 1만여명을 사살하거나 사로잡는 전과를 올립니다. 또 그 자리에 함주, 길주, 웅주 등 동북 9성을 쌓고, 남쪽에서 백성 6만여가구가 옮겨와 살도록 합니다. (기억력 좋은 이라면, 이 대목에서 ‘사민정책’이란 단어가 떠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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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안돼 고려는 스스로 동북 9성을 포기합니다. 여진족 잔당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가, 공방이 길어지면서 고려의 피해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여진족이 사신을 보내와 “아홉개 성을 돌려주면 대대손손 정성을 다해 공물을 바치고 절대 남쪽으로 침범하지 않겠습니다”며 애원하자, 조정에서는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새로 확보한 영토를 되돌려주기로 의결합니다. 동북 9성 반환 뒤에는 책임론이 제기됩니다.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일(북벌)을 벌여 나라의 힘을 낭비했다며 윤관을 탄핵하는 주장이 빗발쳤고, 결국 윤관은 관직과 공신 칭호를 박탈당합니다.

당시 영토 개념이 지금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개척한 영토를 순순히 내주고 전쟁영웅을 처벌하자고 나서다니 왜 그랬을까요? 그 배경에는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야 했던 당시 기득권층의 심리적 반발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별무반의 핵심인 신기군(기병)은 ‘말을 가진 자’로 구성돼 있었는데, 귀한 재산인 말을 가진 이 가운데는 당연히 지배층의 자제가 많이 포함돼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벌 귀족들로서는 여진 공략이 탐탁지 않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고려사>의 한 대목입니다.

“‘지금 징발하는 중앙, 지방 신기군으로서 부모 나이가 70살 이상이고 외아들이면 병역을 면제해주고, 한 집안(1호)에서 3~4명이 군대에 나갔으면 1명을 감해주고, 재신(판서)과 추밀(재상)의 아들로서 자원하지 않으면 또한 면제해주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수락했다.”

군인_픽사베이

<군인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그러고 보니 1000년 전 고려, 500년 전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병역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다니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모병제가 빨리 도입돼 병역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자체가 없어지길 기다려야 할까요? 그 전에라도 더는 사회지도층의 병역기피가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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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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