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의 진실, 그 너머에는

 

■ 익산 ‘쌍릉’ 유물 공개로 진실 여부 관심 모으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최근 신라 공주가 백제 왕비가 됐다는 ‘서동요’ 설화가 사실일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유물들이 공개됐다고 합니다. 옆 나라 공주와 위계에 의한 결혼을 하고 왕위에까지 오른다는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가 정말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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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306호 삼국유사 권 3~5 /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공식홈페이지 >

■ 서동요 설화는 진짜일까?

서동요 설화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를 흠모한 서동(무왕)이 밤마다 공주가 몰래 나와 자신을 만난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지어 신라 도읍인 경주의 아이들에게 퍼뜨리도록 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노래를 알게 된 진평왕이 진노해 공주를 내쫓자, 왕비는 선화공주에게 순금 한말을 노잣돈으로 내줍니다. 서동은 귀양길에 오른 공주를 구출해 백제로 데려가 결혼하고, 선화공주가 가져온 순금을 이용해 진평왕의 인정을 받고 백제에서 왕위에 오릅니다. 왕비가 된 선화공주는 무왕에게 청해 전라북도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게 설화의 결말입니다.

이 이야기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러브스토리지만,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습니다. 일단 진평왕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기에 셋째딸은 없었습니다. 큰딸이 그 유명한 선덕여왕이고, 둘째딸은 태종무열왕(김춘추)을 낳은 천명부인입니다. 게다가 ‘서동요’ 기록을 유일하게 남긴 일연도 서동은 (신분상 왕이 되기 어려운) 과부의 자식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그가 법왕의 서자라고 해도, 변두리(익산) 출신이 뒤늦게 핏줄을 인정받아 왕위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뿐이고, 만약 그랬다고 해도 선왕보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고구려, 신라와 맞대결한 용맹한 군주가 되기는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2009년 익산 미륵사터 동탑의 기단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백제의 대신 사택적덕의 딸인 무왕의 왕후가 탑을 세웠다는 내용의 발원문이 나와 선화공주가 왕비였다는 것 자체가 허구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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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전주박물관 / 사진 출처 : 나무위키 >

■ 재조명 되고 있는 서동요의 진실 논란

잠잠하던 서동요 진실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국립전주박물관이었습니다. 익산시 석왕동 숲 속에 서로 떨어진 채 자리하고 있는 두 개의 백제 고분(대왕묘, 소왕묘)인 ‘쌍릉’에서 99년 전에 수습됐던 치아 4점을 분석해보니, 20~40살 성인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또 당시 대왕묘 석실 안에서 출토된 적갈색 토기 1점도 신라 계통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왕묘급 대형 백제 고분의 주인공이 성인 여성인데다 신라 쪽 유물까지 출토됐다니,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무덤을 주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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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요는 왜 국민적 연애 담으로 유명했을까?

하지만 어쩌면 서동요의 진실보다도 서동요가 시사하는 의미가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1400~1500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즐거운 이야기가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습니까. 그 보다는 ‘서동요는 왜 국민적인 연애 담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생각해볼 대목은 서동요가 삼국시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란 점입니다. 고귀한 신분의 공주님을 얻은 것만으로도 남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한데, 거기에 공주 덕에 손쉽게 부와 권력을 이루니 후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염원하던 남성들에게 서동요 이야기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널리 퍼지고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지 않았겠냐는 것입니다.

삼국시대에 서동과 비슷한 역 신데렐라 모델로는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장군을 들 수 있습니다. 부인 잘 만나서 바보에서 장군이 된 온달은 성취 과정은 서동에 못지 않으나, 전쟁터에서 일찍 전사하고 맙니다. 롤모델로 삼기에는 치명적인, 해피엔딩 스토리의 주인공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

좀 정치적인 해석도 가능합니다. 사실 서동요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계급을 한단계씩 낮춰 생각해보면,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신라 (왕이 아닌) 귀족의 딸이 백제 사람과 결혼하고, 신랑은 그에 기초해 부를 일궈 (왕이 아닌) 지역의 유력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이야기되다가 어느 순간 주인공이 공주와 왕으로 한단계씩 신분 업그레이드된 것은 아닐까요? 주인공들의 신분을 바꿀 이유가 뭐냐구요? 알다시피 무왕 다음왕인 의자왕을 끝으로 백제는 멸망합니다. 망국의 슬픔을 지니고 살았을 이들에게 ‘사실 당신들이 그리워하고 숭상하는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고, 만날 싸우던 신라와 백제가 왕가끼리 사돈이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위로와 함께 현실을 인정하고 잘 지내자는 통합의 정신을 담은, 약간은 윤색된 이야기가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서동요의 배경이 진평왕과 무왕 시기란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신라와 백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싸우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하필 가장 대립이 심하던 시절의 왕들을 장인-사위 관계로 설정했다는 것 또한 사실로 보기엔 너무 극적입니다. 물론 이런 추론과 해석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입니다.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서동요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야 하는 것일까요? 이번 유물 분석 결과를 공개한 전주박물관에서 3월과 10월 전문가 학술세미나와 대규모 학술대회를 연다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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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One thought on “‘서동요’의 진실, 그 너머에는

  1. 선화공주의 나이를 계산해 보셨나요? 최대로 잡아도 590년 이후생. 무왕이 왕이 된건 600년. 10살도 안된 여자가 연애했다는 소문만으로 유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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