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애민(愛民)정신이 곱해지다, 최초의 출산 휴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여기서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데요, 이대로 가면 2100년엔 노인이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것이라는 ‘인구 위기’ 전망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세종대왕이신데요. 많은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이룬 혁신이 있습니다. 바로 출산 휴가’입니다. 일반 백성뿐 아니라 노비의 산후 고충을 나라가 나서서 헤아리고자 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아빠 엄마가 함께 해야 한다는 앞선 생각을 가졌던 세종대왕. 그 생각이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면 ‘출산율 최하위’라는 오명은 없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파격적인 복지제도입니다!

조선시대의 출산휴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세종대왕의 노비 휴가 제도는 3단계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여자 노비의 출산 후 휴가기간의 연장입니다.
세종 8년(1426년), 세종대왕은 관청의 여자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종래에 7일간 주던 출산휴가를 100일로 늘리도록 했습니다. 7일은 산모가 몸을 추스르고 갓난아기를 놓고 일하러 나오기엔 너무 짧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출산 전 휴가제도의 도입입니다.
세종 12년(1430년), 세종대왕은 출산이 가까워 일했다가 몸이 지치면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은 경우가 있다며, 출산 전 1개월 동안의 일을 면제해 주도록 했습니다.

세 번째는 남편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준 것입니다.
여자 노비가 출산휴가를 받아 아기를 낳았지만 남편에게는 전혀 휴가를 주지 않고 그전대로 일을 하도록 해, 종종 돌볼 사람이 없던 산모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이에 세종대왕은 세종 16년(1434년), 여자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일을 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3-세종대왕

세종대왕의 자녀는 18남 4녀였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본인 스스로 다자녀를 가진 아버지였던 만큼 임신과 출산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 590년 전에 시행된 출산휴가 제도라고 믿기 힘들 만큼, 현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죠.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휴가는 정규직, 비정규직 상관없이 임신한 여성근로자 기준 출산 전후로 90일 간의 휴가를 받을 수 있는데요. 배우자의 출산휴가는 5일 범위에서 최소 3일 이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최초 3일은 유급, 이후 2일은 무급 휴가로 진행된다고 하는데요. 나름 복지에 앞선 유럽도 남편의 출산휴가는 보통 2주에 불과하고요. 반면, 미국은 유급 출산휴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선진국이기도 합니다. 세종대왕이 얼마나 앞선 생각의 소유자였는지 어쩌면 세계 최초의 출산휴가 제도가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첫 출산휴가를 시행한 때가 세종 8년(1426년)으로 세종대왕의 나이 불과 29세 때입니다. 비록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고는 하나 29살 청년으로 백성의 출산휴가까지 염려하는 대목에서 그 안목의 넓고 깊음에 경탄할 수 밖에 없네요! 세종대왕의 백성을 생각하는 깊은 안목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신분인 노비조차 하늘이 낳은 백성이다’라고 봤던 애민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세종대왕과 애민정신이 곱해져 시대를 초월하는 혁신적인, 최초의 출산휴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혁신의 씨앗이 되었던 조선시대 최초의 출산휴가!

그 씨앗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싹트고 열매 맺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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