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국이 존재할까?

어렸을 적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본 적 있으시죠? 그 소설 속에 키가 아주 작은 소인들이 나오는데요. 이번엔 정반대로 소인이 인간세계에 온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김진우 SF작가의 상상을 통해 만나보세요!

내겐 너무 큰 당신

어느 날 곤충학자 드가는 숲 속에서 이상한 벌레를 발견했다. 길이가 10 센티미터쯤 되는 그 벌레는 마치 죽은 듯 축 늘어져 있었는데, 돋보기로 살피던 그는 비명을 질렀다. 외모가 인간과 똑 같았고 옷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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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전설 속의 소인! 다행히 그 벌레는 아직 숨 쉬고 있었다. 그는 벌레를 집으로 가져갔다. 그는 하루가 넘도록 병 속의 소인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쪽잠에서 깬 그는 드디어 두 발로 일어선 요정을 보게 됐다. 돋보기를 들이댄 그는 너무 황홀하여 정신까지 잃을 지경이 됐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요정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요정의 입에 한 쪽 귀를 갖다 댔다. 처음 듣는 언어였다.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요정은 몸짓으로 ‘너의 언어를 내게 가르쳐줘.’란 뜻을 남자에게 전했다. 드가는 그녀에게 불어를 가르쳤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언어 습득 능력은 아주 빨랐다. 불과 일 주일 만에 불어를 마스터해버렸다!

마니란 이름을 가진 그녀는 소인국 ‘릴리펏’의 공무원이었다. 한 남자한테 실연당한 분노 때문에 그녀는 충동적으로 금지된 울타리를 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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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전설 속의 거인이 산다는 낯선 땅을 헤매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비둘기한테 쫓기다가 나무에서 추락한 후 정신을 잃게 됐던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소인국의 역사는 1 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외계에서 지구로 날아든 한 씨앗이 소인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 후 소인들은 두려운 존재인 뱀, 새, 인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지하에서 문명을 일구어왔다. 그들의 과학 기술 수준은 놀라웠다. 특히 나노테크놀로지 쪽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뤄낸 그들은 이미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자신들의 머리에 붙이는 보조 두뇌로 쓰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엽록체 세포를 몸에 이식하는 기술을 발전시킨 그들은 낮만 되면 땅 위로 상체를 내놓고 식물처럼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땅 밑의 도시에서 활동적인 생활을 했다. 그는 우연히 마니의 벗은 몸을 본 적이 있는데, 등 뒤에 마치 문신처럼 보이는 녹색 줄무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엽록체 세포가 이식된 부위였다. 그녀가 입으로 먹는 것은 무기염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드가가 물었다. “이 세상에 소인국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 동안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고산 지대나 깊은 밀림 속에서 사니까. 우리는 인간들을 두려워해. 만약 노출되면 인간은 우리를 애완곤충 취급을 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인간들과 싸울 수밖에 없겠지.”

한 동안 그녀는 높은 나무 벽으로 둘러싸인 초미니 집에 갇힌 채 살았다. 그런데 얼마 후 나무 벽이 치워졌다. 그 이유는 바로 둘이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드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돋보기로 확대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밀어를 속삭였다. 그녀도 터무니없이 큰 거인을 향해 연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결국 둘은 아무도 몰래 결혼식까지 올렸다.

신혼 초야에 남자가 말했다. “당신을 크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러자 여자가 대꾸했다. “당신이 작아지면 되지.” “내가 작아지면 당신을 지켜줄 수 없을 거야.” 둘은 매일 사랑의 감탄사만큼이나 자주 안타까움이 배인 한숨을 쉬어야 했다. 제대로 안아볼 수도 입맞춤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아쉬움은 불만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니는 드가가 몰래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드가는 바로 곁에 부인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화장실에서, 거실에서, 베란다에서 다른 여자와 밀어를 속삭였다.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어느 날 불륜의 증거를 잡기 위해 남편의 뒤를 밟았다. 그녀는 소인들이 순간적으로 몸을 숨길 때 쓰는 축지법을 썼다.

소인국-축지법

쉬지 않고 30 센티미터씩 점프해 전진하는 것이었다. 마니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길거리에 망연히 선 채 눈물을 흘렸다. 그때 누군가 그녀를 검지와 엄지로 집었다.

다음 날 뉴스에 나타난 마니는 인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소인이 나타났다고 연일 방송이 떠들어댔다. 실험실에 갇히게 된 그녀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가 됐다. 드가는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이 그녀의 남편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니도 “그를 전혀 몰라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즈음 릴리펏에선 ‘마니 구출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마니를 통해 소인국들에 대한 정보가 모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로봇새를 탄 원정대가 마니가 갇혀있는 실험실로 돌진했다. 그리고 개개의 원자들을 움직이는 침으로 순식간에 쇠문을 뚫고 들어가 그녀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요정을 짝사랑하던 전 세계인들의 상실감은 아주 컸다. 수많은 남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어느 놈이 납치해간 거야!’ 그들은 소인국의 원정대가 구출했다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마니는 릴리펏으로 돌아간 후에 비밀 경로를 통해 드가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너무 큰 건 미워요. 안녕!” 몇 년 후 마니는 소인국 세계에서 최고 영웅들로 떠오른 ‘마니 구출 원정대’의 한 대원과 결혼했다. 그 대원은 실연을 안겨 그녀를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했던 바로 그녀의 전 남자친구였다. 허니문 때 그녀는 그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당신은 작아서 좋아!” 끝.

김진우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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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AD 3183년생이란 걸 믿어줄래. 난 시간이동과 음악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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