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두 해 전 개봉된 영화 <스타 트랙, 어둠 속으로 Star Trek into Darkness; 2013년>를 보면 승무원을 우주선 안에서 행성의 지표면에 곧바로 전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신기술은 극장 판 영화 버전에서뿐 아니라 이 작품이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처음 시작된 1966년부터 일찌감치 등장한다. 착륙 선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이나 물자를 순식간에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옮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애초의 설정에 따르면 인간이나 화물을 입자 알갱이들로 낱낱이 분해한 다음 에너지로 바꿔 빛의 속도로 목적지에 전송하여 거기서 재조립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기술이 실제로 발명된다면 그 용도는 단지 우주 밖으로의 수송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래리 니븐(Larry Niven)의 과학소설 연작 <알려진 우주 시리즈 Tales of Known Space; 1964~2012년>에서는 이동 부스가 엔터프라이즈 호의 전송실 같은 역할을 한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스타트랙>에서 주인공 제임스 커크 선장이 지휘하는 우주선이다.) 이 이동 부스 안에 들어가 목적지 코드만 입력하면 즉시 육신이 입자화 되어 눈 깜짝할 새에 지구 반대면의 또 다른 이동 부스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구촌 전역이 1일 생활권에 접어들게 되니 KTX를 비롯해 어지간한 장거리 교통수단은 죄다 고물상에 들어가고 산업자체가 대대적인 구조개편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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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상의 극한을 보여준 예가 댄 시몬즈(Dan Simmons)의 2부작 연작장편 <일리움 Ilium; 2003년>과 <올림포스 Olympos; 2005년>다. 여기서 그려지는 근 미래의 지구에는 자전거와 마차 이상의 교통수단은 아예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조금만 멀다 하면 팩스로드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팩스로드는 이동 부스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다. 작가들끼리도 자존심이 있는 이상 똑같은 개념을 이름까지 그대로 갖다 쓰기는 쑥스러우니까 자기 나름의 작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똑같은 순간이동 방법을 놓고도 저마다 물질전송(Beam-up/down; <스타트랙>)과 이동 부스(<알려진 우주 시리즈>) 그리고 팩스로드(<일리움/올림포스>)라는 식으로 다르게 표현하곤 한다.

“데이먼은 울란바트에서 토비의 두 번째 이십 주기 파티에서 팩스 할 당시인 바로 1초 전만 해도 아침이었는데, 단 1초 만에 저녁시간에 서 있게 되는 통에 인식기능에 혼란을 느꼈다…(중략)… 그는 팩스로드 중앙에 서 있었다.” — <일리움>, 국내번역판 18쪽

위의 지문에서 보듯, 이러한 사회에서는 비단 교통수단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가치체계와 문화까지 대격변을 겪는다. 바다와 하늘이 더 이상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어느 대륙에 살고 있는지 혹은 잠시 어느 대륙에 와 있는지 그리고 지금이 어느 시간대인지 따위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근무환경과 대인관계도 깊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팩스로드만 이용하면 로마의 집에서 출근하여 서울에서 근무한 다음 저녁식사는 뉴욕에 살고 있는 애인과 레이갸비크에서 함께 할 수 있다. 이처럼 초시간, 초국경, 초문화 사회에서는 인종과 지역 색으로 인한 갈등은 전보다 많이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종교문제는 예외다.)

#4

그렇다면 순간이동의 세상이 온다면 좋은 일만 만발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잘나 봤자 과학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므로 누가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되기 때문이다. <알려진 우주 시리즈>에 속하는 <세계선단 5부작 Fleet of Worlds Series; 2007~12년>에서 지구세계를 정탐 중이던 외계인(퍼펫티어인) 네서스는 국제연합의 주요 인사들을 포함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수시로 납치한다. 그가 감쪽같이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사람들을 순식간에 납치할 수 있는 것은 이동 부스를 자기네 문명의 초과학으로 가볍게 해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동 부스에 들어간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곳에 당도하게 된다. 스티븐 굴드의 소설 <점퍼 Jumper; 1992년>에서는 선천적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초능력을 자각한 사람들이 은행 강도를 비롯한 범죄에 나선다.(이 영화는 2008년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철통방어를 하는 금고라도 좌표 값만 알고 있으면 불쑥 들어갔다 아무런 제지 없이 나올 수 있고 살인청부업자라면 살해하려는 사람의 프라이버시 한 공간에 느닷없이 나타날 수 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er)의 장편 <나의 목적지는 별들 The Stars My Destination; 1956년>에서는 순간이동 능력이 미래판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 할 주인공의 복수 행각을 돕는데 쓰인다. 여기서는 이러한 능력을 조운트(jaunt; 짦은 여행)라 부른다.

이제까지는 순간이동능력의 다양한 쓰임새를 여러 과학소설들의 사고실험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과연 과학은 작가들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미국의 아리조나 주립대 교수 로렌스 M. 크라우스(Lawrence M. Krauss)가 펴낸 교양과학서 <스타트랙의 물리학 The Physics of Star Trek; 1995년>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초능력을 통한 순간이동은 실증적인 예라 보기 어려우므로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TV 드라마 <스타트랙 차세대 시리즈 Star Trek: The Next Generation Series>가 공개한 순간이동에 관한 기술설명서를 보면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순간이동장치를 목표물을 향해 조준해 영상패턴을 읽어 들인다. 비(非)물질화된 형상(원자들과 구성 데이터)은 패턴보관실에 잠시 저장되었다가 원형구속발사기를 통해 유동형 물질 형태로 목적지를 향해 발사된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학기술상 혹은 과학법칙상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복사해서 전송해야 하는 원자들의 수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성인 한 명을 원자로 분해하면 약 10의 28제곱개가 된다. 이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들을 일일이 순수한 에너지(이를 테면 빛의 형태)로 바꾸면 대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나올까? 아인슈타인의 E=MC2을 떠올려보라. 50kg의 물질을 순수 에너지로 바꾸면 1메가톤급 수소폭탄 1천 개의 위력이 된다. 예서 끝이 아니다. 이것들을 목적지에서 다시 원래 모양대로 다시 짜 맞추는 데 필요한 정보량이 얼마나 천문학적인 규모이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사람마다 약 10의 28제곱개의 조합은 다 다를 것 아닌가. 체형, 피부색, 건강, 성격, 취향, 인성, 뇌 속의 보유정보 등이 천차만별일 터인데 이를 일일이 구분해서 재구성하려면 데이터 저장장치는 대체 얼마나 되는 용량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 혹여 전송과정에 아주 약간의 먼지나 이물질이 끼어들기만 해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영화 <플라이 The Fly; 1958/1986년>에서는 순간이동장비 안에 예기치 않게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드는 바람에 과학자 주인공의 몸과 함께 한 덩어리로 재조합 되어 목적지에 나타난다.

#1

둘째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미래에 아무리 정확한 측정기술이 개발된다 한들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의 정확한 물리 량 정보(위치와 방향/속도)를 동시에 한꺼번에 알아낼 수 없다.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고 나면 그것이 바로 다음에 어느 쪽으로 얼마나 빨리 이동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물리법칙 자체가 그렇게 짜여 있는 이상 향후 어떤 첨단장비가 개발된다 해도 이 장애물을 넘을 수 없다. 이는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우주선을 물리법칙상 만들어낼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전자의 물리 량을 모르는 채 어찌 원자의 정보를 파악해서 다시 재구성한단 말인가.

이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만일 순간이동기술이 구현된다면 전혀 뜻밖의 국면이 빚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동일한 인간의 무한정 복제가 가능하다. 한 인간의 원자 개수와 종류 그리고 배열방식을 마치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낱낱이 밝힐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과 똑같은 원자들을 계속 공급할 수만 있다면 송신 부스에서 신호를 보낼 때마다 수신 부스에서 동일한 사람을 출현시킬 수 있다. 이른바 ‘개인 군단’의 출현이다. 적이 쳐들어오면 일급 정예 병사를 원본으로 하는 개인군단을 보내 격파하면 된다. 정작 오리지널 인간은 전장에 나갈 필요도 없다. 얼핏 괜찮은 아이디어 같지만 이는 윤리/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유전공학으로 만든 복제인간을 악용하는 짓과 오십보백보인 까닭이다.

#2

순간이동을 위해 인간의 몸을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뇌 부분만 따로 추출해낼 수 있다면 디지털 의식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여 영생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으면 육신을 지닌 인간과 디지털 의식 간에 서로 재산권과 인격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필자가 예로 든 부작용들은 실제 일어날 일들 가운데 아주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정말 이러한 기술이 도입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질지는 누구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감당할 수 없는 파고를 굳이 자청하는 수고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랙의 물리학>이 정의한 방어선들이 오히려 반가운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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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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