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돌아보는 ‘사회 문제’

70년 전 한 여대생의 자살과 사회적 타살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10년 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자살률입니다. 2013년 한해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4427명으로 하루 평균 40명꼴입니다. 자살은 10~30대 사망원인 1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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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사회적 약자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항거 수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약자의 자살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게 세상사입니다. 70여년 전 일제시대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937년 1월19일, 이화여전(이화여대) 영문과 3학년 문창숙이 신촌캠퍼스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맨 채 발견됐습니다. 제주 출신 고학생이던 그녀는 기숙사 금전출납부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전해 봄 금전출납부에서 20원이 비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학교에서는 20원 인출 기록 필적이 유사하다며 문창숙을 의심했지만, 그녀는 절대 아니다며 부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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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사감은 수시로 그녀를 불러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종용하고, 문창숙은 부인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친구들도 따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움 속에 힘든 한해를 보내고 새해 정초에, 학교에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문창숙은 누명을 쓰고 있고 범인은 따로 있다’는 익명의 투서였습니다.

사감은 이날 저녁시간에 전체 학생을 강당으로 불러 모아놓고 투서 내용을 받아쓴 뒤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사감은 밤새 필적들을 조사해 투서자 필적이 문창숙의 그것과 같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보고를 받은 문과학장(교수)은 이튿날 문창숙을 호출해 ‘지금이라도 바른대로 말해라’고 말했고, 문창숙은 ‘오후에 대답하겠습니다’라며 학장실을 나왔습니다.

문창숙은 그길로 기숙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겠다는 유서를 쓴 뒤 학교 뒷산에 올라 목을 맸습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봉건을 배척하는 신식교육의 장에서, 그것도 평등과 박애를 내세우던 기독교 여자대학에서 왕따 자살이 일어나다니, 어안이 벙벙할 일이었습니다. 문창숙을 의심하고, 그녀의 목 맨 모습을 발견하고도 징그럽다며 교목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도록 한 학생들의 매정함을 탓하는 여론이 형성됐고, 특히나 문창숙을 추궁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감과 문과학장에게 혹독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문과학장이었던 영문과 김상용 교수는 잇따르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왜 사냐건/웃지요’라는 구절로 유명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지은 김상용 시인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일제 말기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등 친일시를 발표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그는 미 군정기에 강원도지사를 지낸 뒤 1951년 한국전쟁 와중에 피난갔던 부산에서 식중독으로 사망합니다.

사감 박은혜는 사건 직후 훗날 친일파가 된 장덕수 동아일보 부사장과 결혼해 유명세를 탔으며, 해방 뒤 경기여자중·고등학교에서 10여년 동안 ‘여제(女帝)와 같은’ 교장으로 재직하며 교육계 유명 인사로 활동합니다. 그녀는 1960년 4·19 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공천을 받아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주먹계 출신 김두한에게 밀려 낙선하고, 3년 뒤 세상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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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흐지부지됐지만, 책임자들의 말로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가장 억울한 것은 당사자겠지요. 죽음으로 호소한 그녀의 결백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무상하게 세월만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살아서 끝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는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혹시 누명을 벗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힘들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청소년이나 젊은이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은 기술이 발전하고 물자가 풍부해진 지금도 종종 일어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 목숨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타살’ 성격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게만 느껴집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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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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