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병신(丙申)년과 혁신의 타이밍

 

 

갑오년~을미년과 달리 존재감 없는 병신년,
변곡점 지난 뒤여서 의미 있는 기억 없어

 

어느덧 2016년 1월도 절반을 넘겼고, 설 명절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설을 지내고 나면 진짜 병신(丙申)년이 시작됩니다. 묘한(!) 어감 때문에 페이스북 SNS 마케팅에서 사용이 금지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는 그 병신년 말입니다. 이름 때문에도 슬프지만, 역사를 알면 더 슬픈 병신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병’은 붉은 색(赤)을 의미하고, ‘신’은 원숭이를 뜻하기에 ‘빨간 원숭이의 해’라고 불리는 병신년은 60간지 중 33번째에 해당합니다. 31번째가 갑오년, 32번째가 을미년입니다. 아시다시피 120년 전 갑오년(1894년)과 을미년(1895년)에는 역사적인 사건이 여럿 일어났습니다. 갑오년에는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청일전쟁과 갑오경장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졌습니다. 이듬해인 을미년에는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납니다.

 

■ 1896년(병신년) 조선의 왕, 대사관으로 피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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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사관 1900년경 / 출처 : 위키백과>

그렇다면 갑오년과 을미년이 지난 뒤 찾아온 병신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을미사변으로 부인을 잃은 고종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1896년 2월)이 일어납니다. 국제적으로는 그리스에서 세계 평화와 만국의 공존을 상징하는 1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된 뜻깊은 해에, 조선에서는 왕이 외국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독립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갑오’, ‘을미’와 달리 ‘병신’을 붙인 사건이 없어서일까요. 병신년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고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을 찬찬히 살펴보면 병신년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갑오년과 을미년을 거치며 조선의 운명이 사실상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갑오~을미년이란 변곡점을 지나면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청나라를 제압한 일본의 조선 접수는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 혁신도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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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년(1984년)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압송 당시 / 출처: 위키백과 >

병신년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관파천 두 달 뒤 서재필‧유길준‧윤치호‧주시경 등이 주도해 <독립신문>을 창간했고, 7월에는 서재필‧윤치호‧이상재‧이승만 등이 독립협회를 결성합니다. 하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 이전에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독립에의 열망을 제대로 열매 맺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갑오~을미 변곡점에서 정확히 10년이 흐른 뒤인 1905년, 조선은 일본과 을사늑약을 맺고 국방과 외교권을 박탈당합니다.

결국, 병신년은 우리 역사 속에서 혁신의 타이밍을 놓친 뒤 허망하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해로 기억됩니다. 국가건, 기업이건, 어느 조직에서나 흥망성쇠가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게 다 지난 뒤 역사를 전체적으로 돌아볼 때 말하는 일반론일 뿐, 현실에서 매 순간 조직의 운명은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가짐과 노력의 총량에 의해 결정됩니다. 구성원들의 노력 정도에 따라 흥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망이 얼마나 늦게 오게 될지 결정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혁신의 타이밍입니다. 아무리 좋은 혁신이라도 이미 대세가 결정됐거나 경쟁자가 먼저 목적하는 바를 성취한 뒤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120여 년 전 나라를 살려보겠다며 일어선 무지렁이 농민들도 이런 사실은 깨닫고 있었나 봅니다. 전라도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들은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거리다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서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니 말이죠.

나라건, 기업이건, 지금 혁신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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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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