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19세기 말 고딕 풍 공포소설 J. 쉐리든 르 파뉴(Sheridan Le Fanu)의 <카밀라 Carmilla; 1872년>와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 Dracula; 1897년>에 나오는 흡혈귀들과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므두셀라의 공통점은 뭘까? 답은 수단이야 어떻든 간에 하나같이 영생을 누리는 존재들이란 점이다. 그 만큼 불사/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뿌리가 깊은가보다. 위의 흡혈귀 소설들이 씌어질 당시 유럽인들의 평균수명은 불과 49세. 반면 2002년 현재 남성의 평균수명은 77세. 203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미국에서만 7천만 명을 넘어설 거란다. 2100년의 평균수명은 85~90세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의 노화방지의약아카데미 설립자 로널드 클라츠(Ronald Klatz) 박사는 줄기세포가 노화된 장기를 교체하는데 기여하게 되면 무려 140세까지 살게 되리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어디 그 정도로 배가 부르겠는가, 욕망 덩어리 인간이? 예서 만족했다면 20세기 과학소설에 불사신 인간들이 꾸준히 들락거렸을 리가 없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사체 조각들을 이어 붙여 새 생명을 깨우려 시도한 이래, 작가들은 과학기술 시대에 부합하는 나름의 설정으로 불사신들을 내세워 이 해묵은 신화의 불멸을 도왔다. 생물학적 돌연변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핑계에서부터 냉동인간 기술을 활용한 반생인(半生人) 그리고 인간의 의식 일체를 사이버스페이스에 이식하는 나노기술 기반의 사이버네틱스에 이르기까지 불멸의 존재에 대한 상상은 오늘날에도 수그러들 줄 모른다.

 “불사는 유전자들이 일으킨 일종의 사고다. 돌연변이 말이다. 아마 1천 년~1만 년마다 한 번씩 인간이 불사로 태어날 것이다. 그의 몸은 스스로를 늘 재생하고 있어 나이를 먹지 않는다.”

      – 헨리 커트너(Henry Kuttner)의 단편소설 <세기들의 교차 A Cross of Centuries; 1958년>

 이처럼 불사의 몸이 된 원인으로 예기치 못한 돌연변이를 꼽은 또 다른 작품들로는 제임스 건(James Gunn)의 장편소설 <불사신들 The Immortals; 1962년>과 리차드 쉔크맨(Richard Schenkman)이 연출한 영화 <지구에서 온 사나이 The Man from Earth; 2007년>가 있다. <불사신들>에서 돌연변이 불사신은 직계 후손에게 불사의 유전형질을 넘겨줄 뿐 아니라 타인이라도 이 불사신 후손의 피를 정기적으로 수혈 받으면 수명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 <지구에서 온 사나이>에서는 선사시대부터 1만4천년이나 살아온 돌연변이 불사신이 예수를 포함해서 여러 신분으로 역사 속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실제로 돌연변이 불사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수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끼리만 결혼을 여러 대에 걸쳐 반복하면 비정상적일만치 오래 사는 장수집단이 생겨날지 모른다.

01

 과학자들에 따르면 장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건은 우수한 유전자다. 예컨대 당신의 형제자매가 죄다 100살이 넘게 산다면 당신 또한 평균수명이 보통인 집안의 사람들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 만일 장수 유전자를 따로 추출해낼 수 있다면, 혈통 상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조차 (<불사신들>에서처럼) 유전공학을 응용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이러한 논리에서 비약하여 로벗 앤슨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의 장편소설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 Time Enough for Love; 1973년>에는 라자러스 롱(Lazarus Long)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2천 살이 넘지만 여전히 혈기왕성하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죽음을 다소 늦출 뿐 영생을 누리지는 못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반생인 역시 장수족처럼 영생은 아니지만 죽음이 상당기간 미뤄진 존재로, 자연의 돌연변이 같은 우연이 아니라 공들인 노력의 결실이란 점이 다르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장편소설 <유빅 Ubik; 1969년>이 이러한 예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병이나 사고로 조만간 죽을 운명인 사람을 냉동하되 뇌는 덜 얼려서 정상의식과 가사상태 중간쯤에 머물게 한다. 덕분에 몇 분 혹은 며칠이면 뇌사할 사람을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죽음을 뒤로 미루면서 반쯤 깨인 가사상태로 만든다.

육신은 냉동탱크 안에 누워있으나 뇌는 부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기에 종종 가족과 친지가 찾아와 컴퓨터 단말을 통해 서로 대화할 수 있다.

02 (2)

아울러 반생인끼리 사교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그들만의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전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만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육신의 탈피다. 반생인조차 영혼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육신에 붙들려 있는 반면, 인간들의 인격과 기억을 컴퓨터 기반의 사이버스페이스에 다운로드 하면 거의 물질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불의 키스 Kiss of Fire; 1972년>와 그렉 이건(Greg Egan)의 <디아스포라 Diaspora; 2003년> 그리고 김장환의 <욘더 YONDER; 2010년> 같은 장편소설들은 이러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들은 우리가 본질적으로는 DNA와 신경기억들로 암호화된 정보의 총합인 까닭에 영혼은 정보의 일정한 패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디아스포라>의 무대는 사이버인간이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30세기의 미래다. 2075년 인간 유전자의 디지털 정보전환 기술이 개발된다. 그 결과 사람 한 명 당 10억 개의 데이터 필드(field)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 필드 1개는 6비트의 용량을 차지하며 필드 수십 개가 모여 최소한의 단위형질을 띠는 상위 데이터 구조인 쉐이퍼(shaper)를 형성한다. 10억 개의 필드가 1,500만 개의 쉐이퍼로 재조직되는 것이다. 바로 이 쉐이퍼들 간의 무작위 결합 덕에 피와 살이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인간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이버인간들도 번식을 한다는 작가의 가정이다. 다만 디지털 환경이다 보니 번식방법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들을 함께 배합하는 길만은 아니다. 아기를 혼자서 낳는가 하면 여러 명이 부모가 각기 유전자를 십시일반 하여 낳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부모가 전혀 없이 번식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 마지막 경우를 이 사이버세계에서는 ‘고아’라 부른다. 그 결과 영생하는 부모들과 함께 영생하는 자식들이 공존하게 된다. 디지털 공간은 데이터 압축률이 뛰어나서 오프라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인구가 늘어도 문제가 없다. 정 모자라면 데이터를 저장할 하드 스페이스를 늘리면 된다.

03

 이처럼 인격의 디지털 정보화 및 영구저장이 가능하다면 사이버인간과 오프라인 인간 간의 물리적 장벽을 넘어서는 사랑이 가능할까? 2009년 일본에서는 한 남성이 비디오게임 속 여성 캐릭터와 실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난 일도 있으니 육체에 연연하지 않고 감정에만 충실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 특히 이승에서의 인연을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사망하더라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면 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불의 키스>에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가 죽기 전 그녀의 인격과 기억을 저장기기 안에 복제한다. 덕분에 그는 아내의 사후에도 복제된 디지털 아내와 빈번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작은 메모리박스 하나였다. 합성채널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대답은 부정확하거나 엉뚱하기 일쑤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구슬이 미세하게 코팅되어 있었다. 이제 애니는 말을 했다, 발음은 불분명하고 말투는 느릿느릿했지만.”

 –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장편소설 <불의 키스 Kiss of Fire; 1972년>

 지금까지는 불사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현대 과학소설에서 어떤 식의 논리에 기대 묘사되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한날한시에 불멸의 존재로 바뀐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섣불리 속단하기 전에 간단한 사고실험을 하나 해보자. 그리고 나서 판단하는 것은 물론 당신의 몫이다.

 *     *     *

 1.

어느 날 철수는 췌장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해온 어머니가 있는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달려간다. 운명하실 때가 코앞에 닥친 걸까? 그러나 웬걸, 의사는 뜻밖의 소리를 한다. 퇴원하란다, 뉴스도 못 봤냐면서. 바빴다. 밤에는 여동생과 교대로 병간호하랴, 낮에는 아직 신참이라 영업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랴 무슨 정신이 있담. 의사 말이 어머니 병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거란다. 한 동안은 의사도 긴가민가했는데 뉴스를 보니 물리학자들이 명쾌하게 설명 해주더라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병세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 시작한 것은 근 일년 전부터인 모양이다. 성별과 나이,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희한하게도 그렇다고 해서 병세가 딱히 호전되지도 않는다. 그냥 이도저도 아니랄까? 며칠 혹은 몇 분 내에 죽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 골골대면서. 이 기상천외한 현상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뜻밖에도 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어디에 살건 간에 서른이 넘은 사람들은 손톱만치도 더 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지만 서른이 되면 성장이 멈추었다. 단 이미 늙은 몸을 되돌리진 못했다, 병자가 죽지 않고 그냥저냥 골골대듯이.

04

 학자 나부랭이들이 저마다 전공을 들이대며 원인규명을 했노라 떠벌였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답변은 천문학자들의 관측결과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해석이었다. 약 일년 전부터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기현상이 태양계가 인류 탄생 이래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특이한 역장(力場)이 지배하는 성역(星域)에 들어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언제 이 지역을 벗어날지는 모르나 이토록 굼벵이 같은 속도로는 하세월일 거란다.

2.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머니는 철수에게 배가 아프다고 투덜댄다. 아침 일찍 먹은 병원 밥이 아직도 위에 걸려있다나. 의사는 더 이상 해줄 게 없으니 퇴원하라 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췌장암 증상을 줄기차게 읊어대지 않는가. 온종일 구시렁대는 이 불평이 듣기 지겨워 퇴원시킨 걸까? 택시 안에서 철수는 쓴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잘난 척하는 의사는 어디까지 자신의 앞날을 내다 봤으려나? 무덤과 장례식장이 필요 없게 된 마당에 병원인들 도산하지 않고 견딜 재간이 있을까. 철수는 스스로를 위안한다. 어머니는 그나마 다행이야. 교통사고로 사지의 일부가 못쓰게 되거나 치매에 걸린 환자들의 앞날은 얼마나 황당할까? 나아질 기미는 전혀 없건만 하염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니! 가족과 정부는 그 비용을 영원히 지출할 수 있을까? 그래도 독방에 갇힌 무기수보다야 낫겠지. 영원히 외로이 면벽하다가는 달마도사라도 미쳐버리지 않을 재간이 있겠어? 생각해보니 더욱 끔찍한 일은 미친 채로 영원히 사는 삶이 아닐지.

 어머니가 진통제 먹고 간신히 잠든 사이 TV를 켰다. 마침 저녁뉴스 시간이다. 천문학자와 물리학자가 게스트로 나와 뉴스진행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현재 태양계를 에워싸고 있는 역장 지대를 지금 같은 속도로 벗어나려면 적어도 수억 년에서 수십억 년이 걸릴지 모른단다. 철수는 생각한다. 나야 문외한이니 무얼 근거로 저런 터무니없는 장담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그럼 어머니는 수억 년에서 수십억 년 동안 저렇게 배를 쥐어뜯어야 하는 거야? 어머니가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을 훔치다 그는 벽에 걸린 거울에 무심코 시선이 멈춘다. 팽팽한 볼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본다. 그럼 나는 노상 이렇게 팔팔한 스물여덟이야? 그건… 나쁘지 않은데.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철수는 싱긋 미소 지었다.

3.

아냐, 아냐, 생각할수록 이건 아니라고. 허겁지겁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한 철수는 부장이 시킨 커피 타랴 과장과 대리가 경쟁적으로 건네는 서류철을 복사해 갖다 바치랴 눈코 뜰 새 없었다. 최소 수억 년 아니면 수십억 년 간 신입사원 신세라니. 철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아무리 경력을 쌓은들 이 층층시하에서 무슨 낙이 있겠어!

좋은 수가 있어! 철수는 복사기 뚜껑을 신명나게 닫았다. 때려치우고 새 출발하는 거야! 지금은 식품회사의 일개 영업사원이지만 내게는 영원한 시간이 있잖아. 뭐든지 한 우물을 파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거야. 그럼 영원무쌍할 연공서열을 넘어설 수 있겠지. 백년, 천년… 아니 그 정도로도 모자랄까? 그럼 만년 쯤… 평소 꿈꾸었던 요리공부를 하는 거야.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타고난 IQ가 필요한 분야만 아니면 주구장창 갈고 닦아서 정상에 설 수 있을 거야. 이 세상 최고의 요리사… 대리와 과장, 아니 부장과 상무까지도 나한테 찾아와서 “제발 저희 회사에 비법을 전수해주십시오. 로열티는 충분히 후하게… 어쩌고저쩌고”하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거야. 이거 괜찮은 걸!

 부랴부랴 사표를 휘갈긴 철수는 부장 책상 위에 보란 듯이 던지고 사무실을 나선다. 당장은 요리학원부터 등록하고 볼 일이다. 지난번에 부장과 함께 찾아가서 머리 조아리고 레시피를 공유하자고 졸랐던 바로 그 학원에 가는 거야. 신명이 난 철수는 휘파람을 불며 걷다가 지하철 개찰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잠깐, 그래도 더 좋은 학원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편이 낫잖아. 그는 모바일 인터넷을 검색하여 요리학원 사이트들이 나란히 늘어선 화면을 불러낸다.

 헉, 이게 뭐지? 그 순간 감전된 듯 께름칙한 기분이 철수의 뒤통수를 스친다. 어느 학원의 수강생 모집공고를 보나 이해할 수 없는 문구가 심술궂게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자격증반은 50세 이상/ 교육비 정부보조금 지급 대상자는 100세부터!”

05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언제부터 요리사 자격증을 따는데 나이제한이 있었지? 뭐 20~30대는 취미반이라고? 장차 지구촌을 호령할 초일류 요리사가 되실 이 몸이 취미반이나 기웃거리라니. 어이를 안드로메다에다 분실한 철수는 분을 삭여가며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느 학원이나 모두 똑같은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정부 방침이라니! 언제부터 정부가 요리사가 될 나이까지 챙기고 나섰더란 말이냐.

 다시 인터넷 뉴스 기사검색을 시작한 철수, 이내 진상을 파악한다. 태양계의 이상성역(異常星域) 진입으로 사람들의 노화가 완전히 멈췄음이 임상의학적으로 밝혀지자 정부는 국회와 논의하여 후속 대책을 법제화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격증 취득 연령의 대폭 상향이다. 사람들이 죽지 않아 머잖아 인구가 늘기만 할 세상에서 한 직종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제살 깎아먹기가 되어 해당업종 자체가 피폐해진다는 것이 법제정의 논리였다.

 더욱 터무니없는 것은 부칙에 있는 단서조항이다. 이미 공표된 자격시험 제한 연령은 향후 환경변화에 따라 50년 혹은 100년씩 더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인구증가세가 어느 선을 넘어 가파르게 올라갈 우려에 대비한 예비조항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아니 그럼 자격시험 보려면 앞으로 22년을 기다려야 하고 재수 없게도 인력수급시장의 사정이 나빠지면 대기기간이 72년이나 122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벌써 기득권을 가진 녀석들이 자기네 밥그릇부터 챙기다니. 요리사협회를 포함해서 별의별 전문가 집단들이 이번 사건을 핑계로 로비를 벌인 것이 분명해. 오매불망 자격시험 날만 기다리며 머리에 새치가 돋는 꼴을 보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긴 새치가 자라진 않겠군. 대신 뇌가 숯덩이가 될 테지.

낙심한 철수는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사나 이리궁리 저리궁리 하다 지하철 광장의 텔레비전 뉴스 소리에 눈길을 돌린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위기를 비상시국으로 선언하는 바…”

 대통령과 국회위원의 임기를 대폭 늘리겠단다. 대통령은 50년,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국회위원도 50년, 더구나 이쪽은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

06

 지금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는 능력이 검증되고 존경받는 멘토들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며 뉴스진행자가 게거품을 문다. 불현듯 텔레비전 화면 속의 저 뻔뻔한 낯짝 뒤에 숨겨진 동아줄이 보인다. 보도국장, 방송사 사장… 죄다 임기를 보장받았나보지, 50년쯤? 아니 100년쯤? 너희가 플라톤의 이상(理想)국가를 다스리는 철학자 왕이라도 된단 말이냐? 철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자칭 영원한 멘토라 자부하는 자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권력을 영원히 틀어쥔다면… 죽지 않는 독재자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있을까?

철수는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생전 처음 들었다. 그럴 강심장이 못된다면 언제고 공자처럼 될지 누가 알아? 철수의 입술이 비틀렸다. 나이만 먹지 않을 뿐 여전히 부조리한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려면 심성이 둥글둥글해지다 못해 모래알처럼 닳아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당장은 영겁의 세월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밥벌이가 필요하다. 그냥 내일 사무실로 출근해서 부장의 영원한 따까리가 되겠노라고 맹세할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원한 삶을 부여받은 철수의 시름이 깊어진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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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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