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싱크홀! 웜홀과 블랙홀에 대하여

최근 강남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 위험천만한 씽크홀이 생겨나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씽크홀은 지나가는 행인이나 자동차를 난데없이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마치 지구상에 생긴 *웜홀이나 블랙홀 같다. 둘 다 중력의 영향을 받은 결과지만 규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도로에 생긴 씽크홀과 달리 블랙홀은 경우에 따라 우리 태양보다 큰 별을 빨아들일 만큼 먹성이 좋다. 심지어 우리 은하 가운데 있는 초질량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400만 배나 되며, M60-UCD1 같은 외부 은하의 중심에는 무려 태양 질량의 2,100만 배나 되는 블랙홀이 버티고 있다.

*잠깐! 웜홀과 블랙홀은?                              

[웜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구멍이다. 블랙홀이 회전할 때 만들어지며, 그 속도가 빠를수록 만들기 쉬워진다. 수학적으로만 웜홀을 통한 여행이 가능하다.
출처 웜홀 [worm hole] (두산백과)

[블랙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예측된 천체. 별이 폭발할 때 반지름이 극단적인 수축을 일으켜 밀도가 매우 증가하고 중력이 굉장히 커진 천체를 말한다. 이때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탈출속력은 빛의 속력보다 커서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블랙홀 [black hole] (두산백과)

웜홀은 블랙홀과 달리 아직 관측된 바 없다. 이것은 양자요동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다 보니 겨우 양자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덩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SF작가들과 과학자들은 이 구멍을 인공적으로 잡아 늘일 수만 있다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공간을 단번에 이어주는 지름길이 될지 모른다고 상상한다. 작년에 개봉되어 국내 관객 천만 이상을 돌파한 SF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웜홀은 100억 광년 이상의 거리를 몇 분만에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일종의 급행터널로 등장한다.

만일 웜홀이 직녀성이나 북두칠성 같은 곳들에 곧장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로 이용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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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편리한 교통 덕에 은하 일일생활권 같은 것만 떠올린다면 SF작가나 독자의 감성으로는 B급이다. 감동이 없는, 공감이 없는 SF는 과학논문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예컨대 손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 1956년>이나 김수희의 <남행열차; 1986년> 같은 노래들을 떠올려 보라. 이러한 노래들은 첨단 장거리 교통수단이 단지 거리를 좁혀주는 기술혁신의 산물로 그치지 않고 만남과 이별 속에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삶의 현장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웜홀을 지름길로 이용하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인터스텔라> 못지않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만한 작품이 또 없을까? 찾아보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는 제프리 A. 랜디스(Geoffrey A. Landis)의 단편소설 <도라도에서 At Dorado; 2002년>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2004년 황금가지에서 펴낸 선집 <오늘의 SF걸작선>에 실려 있으며 지금도 온라인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라도에서>는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기발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은 웜홀 앞에 떠 있는 항구(실제로는 우주정거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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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치나는 그곳에서 우주선 선원들을 상대하는 술집의 여종업원이다. 그녀에게는 다린이라는 이름의 남편이 있다. 그는 우주선 항해사로 역마살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사내는 우주정거장들마다 현지처를 두는 바람둥이다. 심지어 치나가 살고 있는 항구에는 그녀 외에 또 다른 여성과도 정분이 난 모양이다. 진상을 알게 된 치나는 다린과 대판 싸운 채 그의 세간을 집밖으로 다 집어 던진다. 워낙 치나의 서슬이 퍼런 까닭에 일단 뒤로 물러난 다린은 입항하는 우주선을 타고 평소처럼 일하러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찾아온 사고 소식. 다린이 항해사로 탔던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해 돌아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조각 조각나버린 것이다. 다린의 시체 앞에서 울 기운도 없는 치나.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자신을 추스르며 일하고 있는 술집에 떡하니 다린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불과 어제 핼쑥한 시신을 확인했건만 눈앞의 다린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팔팔하다. 치나는 분노보다 반가움이 앞선 마음으로 또 다시 알리바이를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는 다린의 너스레를 다 들어준다. 이윽고 그녀는 깨닫는다. 다린은 처음에는 사고 우주선을 타지 않았다. 문제의 우주선으로는 내일 갈아탈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사실을 다린이 알고 떠나지 않는다 치자. 그렇게 되면 인과율의 법칙이 무너지면서 웜홀이 파괴되고 그곳과 코를 맞대고 있는 항구 역시 산산조각 날 것이다.

다린이 잠에서 깨어 돌아눕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은 여전히 잠에 취해 흐릿한 채로 그녀에게 몸을 굽혀 입을 맞추었다.

“다른 여자는 없을 거야. 이번엔 정말이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것이 마지막 키스가 되리라 여기며 그에게 입을 맞추고 말했다.

“나도 알아요.”

— <도라도에서>, 국내번역판 112쪽에서 발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웜홀과 블랙홀 같은 특이점 시공간의 기묘한 성질 때문이다. 이론상의 특이점과 달리 현실의 블랙홀은 회전하고 있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 물질들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대신 고리모양의 라인을 따라 반대편 출구로 나가게 될지 모른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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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출구가 이른바 화이트홀이다. 웜홀도 크기는 작지만 원리는 대동소이하다. 요는 이 과정에서 비단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88년 미국의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 발표한 논문 <물리비평 서신Physical Review Letter>에 따르면, 두 웜홀 가운데 어느 한쪽의 웜홀을 고속으로 움직이면 시간팽창 효과가 일어난다. 우주선이 진입하는 웜홀의 입구와 출구 간에 상대론적 이동속도에 따라 해당 우주선은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기존 인과율의 법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타임머신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도라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웜홀을 드나드는 우주선의 상대론적 속도와 진입각도에 따라 자칫 예상치 못한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항해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동속도가 광속에 가까울수록 시간지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실수가 일어났고 덕분에 치나는 남편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치나는 웜홀과 항구가 붕괴하던 말든 다린에게 그의 미래를 알려주고 함께 달아날까? 아니면 바람둥이 남편을 꼴좋다며 시침 뚝 떼고 운명의 배에 태워 보낼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아껴두겠다.

제프리 A. 랜디스의 <도라도에서>는 아무리 과학적인 토대가 굳건한 이야기라 해도 얼마든지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어차피 제일 중요한 것은 과학지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다. 거기에 과학적인 조건을 잘 조화시킬 때 SF 텍스트는 빛을 발한다. 재미가 없다면 그리고 공감할 수 없다면, SF라는 이야기 틀이 아니라 작가에게 말하라. 당신, 재미없다고.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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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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