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빈 공간을 곱하다, 오늘날의 마천루

건축을 공부한 사람과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건축물은 조금 다를 때가 있죠. 일반인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에 시선을 빼앗긴다면 건축가들은 남들이 보기엔 평범하기만 한 건물에 엄지를 치켜세우는 경우가 있는데요. 우리가 건물외관을 보고 발길을 멈추는 이유는 건물을 바라 볼 때 그 건물을 도심지 위에 세워진 일종의 조각품으로 여기기 때문인데요, 건축은 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이기에 외관에 끌리는 게 사실이죠. 반면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은 남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디즈니랜드에는 시큰둥하다가도 뉴욕 시그램빌딩이나 광화문 SK서린 빌딩에 시선을 빼앗겨 사진 찍기에 여념 없기도 합니다

마천루의 탄생

건축학도들은 외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건물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삶과 인간이 누대에 걸쳐 만들어 놓은 도시의 풍경도 중요시 여깁니다. 건축가들은 이처럼 도시의 풍경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고민해 왔습니다. 혁명적인 모양도 좋지만 자연과 역사가 이뤄낸 질서를 같이 이해하고, 건축과 도시가 새로운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도록 고민하는 게 건축가의 사명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지금 도심의 풍경을 상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고층 건물, ‘마천루도 그런 고민 끝에 등장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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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 1922년 베를린 프리드리히가 오피스 빌딩 안을 현상설계에 제출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습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건축가도 유리로 된 마천루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지금이야 도심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보편적 모양이지만 1922년 그런 상상을 했던 건축가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리 마천루는 그걸 실현할 건축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종의 예언적 건축으로 머물러 있었어요.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속세와 떨어져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건축을 연구하는데 일생을 바쳤죠. 그의 유리 마천루 아이디어는 현상설계로부터 35년이 지나 뉴욕에서 비로소 실현됩니다.

그 건물이 바로 뉴욕 시그램빌딩이죠. 캐나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위스키 제조업체 시그램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비적 건물을 뉴욕에 짓기로 합니다. 뉴욕 어디서나 바라 볼 수 있는 초고층 건물 시그램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죠. 이 빌딩은 기존 뉴욕 건물과 다르게 출입구 전면에 너른 광장을 두었는데 이 빈 공간이 건물의 웅장함을 오히려 강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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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그램 빌딩

동시에 빈 공간은 벼랑 같은 건물과 바다 같은 도시 사이의 완충작용을 함으로써 자칫 위압감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검은색 건물을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채워 넣었습니다. 이런 빈 공간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존 마천루 건물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혁신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맨하튼은 마지막 1평의 땅까지도 이용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Less  is more!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

미스의 건축철학 less is more은 단순히 적게 사용하고 디자인을 절제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새로운 현대적 공간 개념을 제안한 것입니다.훌륭한 건축가는 단지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혁신적 설계를 통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새겨지는 하나의 사고를 심어 주죠.

시그램 빌딩과 비슷한 인상을 주는 대표적 건물이 광화문에 위치한 SK서린빌딩입니다. 35층에 이르는 대형 건물임에도 결코 주변 경관을 압도하지 않고 차분하게 스며든다는 인상을 받으며, 가만히 들여다보고 멀리서 조망해보면 건물의 선과 형태가 분명히 드러나 그야말로 미스의 대표작 시그램빌딩을 연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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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서린빌딩

 199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이 미스의 설계는 아니지만, 미스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SK서린빌딩을 설계한 김종성 건축가는 일찍이 1950년대 미스에게 건축을 배운 사제 인연이기 때문이죠!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SK서린빌딩이 스승의 가르침과 서울이란 도시의 질서를 충분히 이해한 가운데 탄생한 걸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0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이 건물에 상을 수여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빈 공간도 건축의 일부로 보는 남다른 발상과 불가능해도 상상해서 건축해보는 미스의 엉뚱함에서 현대의 마천루 건축이 완성되었습니다! 도시건축의 혁신이네요!

SK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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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 더 큰 세상으로 에너지·화학의 큰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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