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기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상상하지도 못한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의학 기술의 발전 또한 기대가 되는데요. 특히, 인간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유전공학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나요? 지금 바로 고장원 SF작가의 글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유전공학의 미래, 나는 당신의 몇 % 아들입니까?

20세기 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한때 복제인간으로 길러지고 있다는 소문이 돈 적 있다.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다이애나의 시신을 영국으로 운반하던 중 한 간호사가 그녀의 피부조직 일부를 떼어내 모 과학자에게 거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이 과학자는 그 세포조직을 배양해 모처에서 복제에 성공했으며 그녀가 20살이 되는 해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만일 약속대로라면 조만간 몇 년 안에 결혼식에서와 같은 꽃다운 나이의 다이애나 복제인간을 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오늘날 의료기술은 1970년대 유전자재조합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응용분야는 식품 가공에서부터 인간 게놈 연구, 줄기세포 연구, 유전병 예방, 노화 및 장수 비결 연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추세라면 유전공학에 힘입어 배아단계에서의 유전자 치료(혹은 조작)를 통해 미리 집안 내력인 유전병을 걸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피부색과 체질, 성격 그리고 지능을 미리 제어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 아이의 미래를 유전자 단위에까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윤리적 논란을 빚을 성 싶지만 선천성 지체장애나 심신장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많은 눈물을 없앨 수 있으리라.

그러나 뭐든 동전의 양면이 있는 법. 의학기술의 발달은 단지 한 개인과 가족에 희망을 안겨주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전반과 인간관계에 예기치 못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장수로 인한 인구증가, 노년층이 다수를 점하게 된데 따른 정치사회적 보수화, 세금을 낼 젊은층의 상대적 감소로 인한 노동연령의 상향조정, 인구압을 해결하기 위한 전쟁 발발 가능성 등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보탤만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안으로 유전공학이 불러일으킬 친족상속권 분쟁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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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태섭이라는 두 남자가 있다. 두 사람 사이에 부자(父子)인 동시에 부자가 아닌 관계가 함께 성립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쉽다. 철수가 40%는 태섭이의 아버지고 60%는 태섭이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가능하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되묻기 전에 수정란과 배아단계에 정교하게 개입해온 유전공학이 향후 어떤 지평을 열게 될지 먼저 한껏 상상해보기 바란다. 자, 맛보기로 필자가 한번 앞장서보겠다.

우선 삼백 년 전에 죽은 백만장자 철수의 생식세포나 체세포가 냉동보관 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세포들로 합성한 정자를 자신의 난자와 결합시켜 수태한 여인이 있다 치자. 그녀가 낳은 아이의 이름은 태섭이다. 이 경우 철수는 삼백 년 후에 태어난 태섭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그렇다. 이로 인해 철수 후손들의 가족관계와 별개로 태섭 또한 유산의 지분을 요구할 자격이 생기는 셈이다. 이 정도는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도약해보자. 철수가 사망 당시 단 한 개의 세포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대신 백만장자인 철수는 자신의 자식을 낳고 싶은 여성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들을 유전공학적으로 열어놓았다.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1.여인이 낳은 아이는 누가 보더라도 철수를 빼닮아야 한다.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과 취향도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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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전공학자는 어떤 남성의 정자도 사용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그녀의 난자만 가지고 처녀생식(또는 단성 생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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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생식과정에서 철수의 사진이나 생전에 녹음해 놓은 목소리를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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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자면 유전공학자는 태섭이 철수를 꼭 닮게 태어나도록 어머니의 유전자를 발생학적 단계에서부터 철두철미하게 관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유전공학자는 철수가 태어날 아이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특징들을 아이를 낳기로 자원한 여인의 염색체 속에 ‘조각해 넣어야’ 한다. 조작이 아니라 조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만큼 난이도가 월등히 높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철수는 태섭의 아버지인가, 아닌가? 어떤 면에서 철수는 사실상 태섭의 아버지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 우리의 아날로그적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둘의 관계를 부자간으로 볼 것이냐의 판단기준은 유전공학자나 생물학적 아버지(철수)와 어머니뿐 아니라 이들이 속한 당대사회의 사회문화적 잣대에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이다. 이 정도 만족하기에는 유전공학의 향후 잠재력이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그러니 한 번 더 도약해보자. 설사 유전자를 단 한 개도 공유하지 않아도 외모와 성격 그리고 목소리까지 쏙 빼닮은 아이라면 그 원본인 남자의 법적 자식으로 인정하는 근미래 사회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때 만약 유전공학자가 스스로 혹은 다른 누군가의 부추김에 의해, 그 아이의 유전형질의 40%를 유언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구성했다면, 당대 문화권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철수를 태섭의 아버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를 회화에 빗대보자. 램프란트가 착수했지만 중간 어디쯤에선가부터 익명의 다른 화가가 작업하여 마무리한 그림이라면, 그것은 램프란트의 작품인가, 아닌가? 램프란트가 40% 작업한 작품이라 정의하고 그에 따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역시 지금 단언을 내리기는 어렵다. 미래사회의 관습이 급격하게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맞물려 어떻게 환골탈태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당대 사회의 관습에 따르게 될 것이다.

아버지인 듯 아버지가 아닌, 위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은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나 지금까지와 같은 유전공학의 발달 추세로 미루어보건대 그리 먼 미래가 아닌 시점에 현실화되면서 뜻하지도 않은 친족상속권과 재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초래할지 모른다. 부분적인 저작권은 제도적으로 인정되기 어렵지 않지만 (공동창작이 좋은 예다.) 부분적인 아버지가 생물학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제도적으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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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태섭의 유전형질이 40%만 철수를 닮았고 20%는 지원, 15%는 원순, 13%는 노갑, 12%는 한길을 닮았다면 누가 그의 진정한 아버지라 해야 할까. 이쯤 되면 대표 아버지나 후순위 아버지 같은 명칭이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까지 예로 든 유전공학으로 인한 뜻밖의 혈족관계에 대한 상상은 필자가 아니라 이미 1970년대에 폴란드의 과학소설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이 내놓은 것이다. 의사 출신 작가인 렘은 당시 ‘지금은 환타지처럼 들릴지 모르나 30~40년 후면 정말 실감나게 되리라’ 예언한 바 있다. 이미 2003년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이제는 유전병 치료를 비롯해서 앞서 예로든 분야에서의 활용 잠재력을 높이는 단계만 남았을 뿐이다. 의학기술이 이처럼 가속페달을 밟다보면 렘이 예측한 세상이 허구가 아니라 변호사들의 밥벌이에 큰 도움이 되는 현실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되면 소설과 영화 같은 대중문화 텍스트도 이처럼 기괴한 가족관계를 일상적인 멜로드라마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자신이 개발한 것에 부단히 적응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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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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