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주변 국가의 오랜 대립 관계

미국과 이란, 아테네와 페르시아?

이른바 ‘압축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는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계층·세대·지역 사이 갈등도 극심합니다. 그런 ‘바람 잘 날 없는’ 나라 한국에서 모처럼 바깥나라 소식이 신문과 방송 톱뉴스로 보도되더군요. 지난주 타전된 ‘미국-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 말입니다. 쿠바에 이어 이란까지 미국과 관계개선에 성공함에 따라 “이제 남은 건 북한뿐”이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도 협상의 손을 내밀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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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XABAY_’이란’>

그런데 이번 뉴스의 주인공이 된 이란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혹시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일치 국가’ 이런 게 떠오르지는 않나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사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시아의 대표선수(?)였습니다. 서구(유럽문명)와 오랜 대립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어찌 보면 2500년 전 그리스(유럽)와 페르시아(아시아) 사이 다툼의 새로운 변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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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MEDIA COMMONS_ ‘Commgames 2006 Mens Marathon.jpg’>

42.195㎞를 달리는 ‘마라톤’의 기원, 많이 들어 아시지요? 마라톤 평원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가 전력을 다해 아테네로 달려가 시민들에게 “우리가 승리했다”는 말을 전하고 죽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B.C 490년 페르시아의 2차 침공 때 아테네는 동서양 사이 최초의 전투(2년 전 1차 침공 때는 태풍으로 페르시아의 침공이 좌절됨)라는 이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아테네 병사가 전했다는 승전보를 두고서는 “유럽이라는 아기가 탄생하면서 낸 소리”라는 평가도 있답니다. 이 전투에서 졌다면 유럽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죠.

몇년 전 개봉해 인기를 끈 <300>이란 영화를 보셨는지요? 영화는 못봤더라도 포스터 속에서 남성미 물씬 풍기던 근육질의 제라드 버틀러의 모습이나, 유행어로 뜨기도 했던 ‘This is Spa~rta!!’라는 포효는 기억하실 겁니다. <300>은 페르시아 수십만 대군의 침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스파르타의 장군 레오니다스(Leonidas)와 300명 결사대의 영웅스러운 삶을 그린 전쟁영화입니다. 실제 2차 침공 10년 뒤인 B.C 480년 페르시아는 더 많은 군대를 동원해 3차 그리스 침공에 나섰는데, 레오디나스와 결사대의 옥쇄에 막혀 전진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아테네인들은 살라미스로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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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MEDIA COMMONS_ ‘Leonidas statue1b.jpg’>

육지에서 스파르타가 영웅이었다면, 바다에서는 아테네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를 이끌던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는 페르시아군에 자신의 노예를 밀사로 보냅니다. 밀사는 “조국과 나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을 배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과 함께 ‘그리스군이 밤새 살라미스 해협 서쪽으로 철수하려고 하니 이곳을 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결국 페르시아 함선들은 아테네군이 철수하기 전에 공격하기 위해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으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 함선은 훨씬 많은 수의 페르시아 함선들을 대파합니다. 기세가 꺾인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일부 주둔군을 남겨둔 채 철군하고, 아테네는 페르시아 주둔군을 마저 격퇴한 뒤 전성기를 맞아 그리스 문명을 꽃피웁니다.

그리스를 구하고, 미래 유럽문명을 있게 한 아테네의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여러모로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합니다. “육군만으로는 안된다”며 바다에 목숨을 걸었고, 전력의 열세를 뒤집기 위해 (살라미스와 명량이라는) 좁은 해역을 택한 게 그렇습니다. 충차(강한 뱃머리로 상대 함선을 부딪혀 파괴함) 방식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마찬가지죠. 비극적 결말은 또 어떻습니까. 이순신은 선조의 의심과 박대 끝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본인이 의도한 전사라는 평가도 있죠), 테미스토클레스 또한 전쟁 뒤 조국에서 쫓겨나고, 모함을 받아 적국이었던 페르시아로 귀순해 여생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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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XABAY_’핵’>

이란(페르시아)과 그리스라는 다른 나라 역사를 얘기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실이 묘하게 오버랩되는군요. 따져보면 미국-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도 순수 국제뉴스는 아닐 것입니다. 또다른 ‘핵위험 국가’ 북한이라는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한국에서 이란 핵 소식이 톱뉴스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라에서 건강하고 즐거운 순수(?) 국제뉴스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는 날은 언제나 올는지, 안타까우면서도 궁금합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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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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