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스타가 바라본 한국의 락

이번에는 책 한 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인 양평이형이 쓴 <고고 대한 록 탐방기>라는 책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양평이형’으로 알려진 그는 하세가와 요헤이라는, 올해 마흔 셋의 일본인입니다.

하세가와 요헤이<사진설명 : 하세가와 요헤이 / 출처 : 두루두루amc 제공>

양평이라는 이름은 요헤이라는 한자를 음으로 읽은데서 나온 것입니다. 동료뮤지션들이 거기서 딴 이름으로 형, 형 하다보니 음악계에선 양평이형이 된 것입니다. 성도 있지요. 김양평. 김씨는 김창완씨가 술자리에서 “넌 김양평이야”라고 해서 김씨가 된 거랍니다.

김창완 장기하 2009 스케치북<사진설명 : 김창완 장기하 2009 스케치북 /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공>

양평이형은 올해로 한국에 온 지 꼭 20년이 됐습니다. 한국 록음악에 빠져 이곳으로 와 20년간을 머물렀지요. 이 책은 그 산물입니다. 신변잡기적인 단상이나 뜬구름잡는 음악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록음악의 역사를 생동감있게 구현해내는 책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 음악 역사에 관한 책을 보면 시대가 너무 떨어져 있거나, 단편적으로 나열돼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론적인 감상평에 치우쳐 있어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한국 음악에 관한 여러 책을 접해봐도 쉽게 마음이 가는 책을 발견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 책은 쉬우면서 재미있고 정보와 맥락을 충실히 얻어낼 수 있어서 신선합니다.

Untitled-1 copy<사진설명 : 대한록탐방기 책 표지>

일본의 음악 칼럼니스트 오오이시 하지메가 묻고 양평이 형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을 통해 신중현과 산울림에서 시작되는 1960~70년대 한국 록음악이 어떻게 현재의 음악계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90년대 중반부터 싹튼 인디음악씬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낸 분석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생생한 경험담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생생합니다. 그런 전달이 가능한 것은 그가 한국에 머무르면서 음악계 주변에서 관찰한 사람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참여해 음악활동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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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 사진 / 출처 : 두루두루amc제공>

 그는 일본 최초의 한국록밴드인 곱창전골을 시작으로 허벅지밴드, 황신혜밴드, 위퍼, 강산에밴드, 뜨거운감자, 산울림, 장기하와얼굴들에서 꾸준히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왔습니다. 자연히 한국록밴드의 20년 계보와 관계도를 그가 몸으로 꿰고 있게 된 셈이지요. 거기에 더해 신중현, 김창완 등 살아있는 전설들에게서 직접 들으며 새긴 록음악계의 주요한 사건들, 시대별로 사랑받았던 아티스트와 음악 트렌드, 음악계의 재미있는 단상과 에피소드를 보여줍니다. 이를 읽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합니다. 요즘 90년대 복고가 유행인데 이 책을 통해선 90년대의 록음악계를 추억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인디씬의 메카였던 홍대앞 클럽 드럭의 모습이나 자우림의 전신 ‘미운오리’에서 노래하던 풋풋한 여학생 보컬 김윤아의 모습을 양평이형의 기억을 통해 떠올려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황금시대 초기, 가장 밀도 높은 시대였어요. 그 시기에 크라잉넛, 노브레인, 위퍼 그리고 벤치라는 미국인 밴드와 갑자기 만나게 된 거죠. 당시는 인디붐이 시작된 무렵이라 방송 제작진도 와서 벤치의 라이브를 촬영했어요. 그런데 좁은 무대에 카메라맨이 올라오니까 멤버 한 명이 그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세웠어요.”(86쪽)

90년대 중반 청계천에 있던 돌, 장안, 청원, 숭인레코드처럼 ‘추억돋는’ 이름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팔던 해적판 레코드 이야기도 많은 록키즈들의 봉인된 기억을 불러낼 것 같네요. 90년대에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상가로 대피훈련을 했다는 에피소드 역시 그 시절을 추억하는데 푹 빠지게 만들어줍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건물 위에 프레스 공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요. 직판 빵집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제가 갔던 때에는 프레스는 하지 않고 남아 있는 재고를 팔았을 뿐이지만요. 청계천 전성기에는 어디에나 프레스 기계가 있었던 모양이에요./당시에는 한국 정부에서 재킷이나 가사 등을 검열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언 메이든이나 오지 오스본의 오리지널 앨범에 전체 10곡이 들어 있다면 한국 정규반에는 그중 7곡만 들어 있기도 했죠. 하지만 복사판은 수입반을 그대로 카피했으니 당연히 검열로 인해 빠진 곡들도 전부 들어 있었어요.” (64쪽)

한국과 일본의 뚜렷한 문화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식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밥먹듯 ‘이민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지만 일본에선 거의 들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한국은 대륙과 이어져 있으니까 유목민이나 대륙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으로 이주해가는 사람도 많은데 대부분 이국에서도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자국에 대한 불만이 생겼을 때 ‘아아, 어디로 이민 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곤 해요”(68쪽)

양평이형은 대학도 포기한 채 록음악에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그가 어떻게 록에 관한 변방의 나라인 한국에 오게 됐을까요. 그는 우연히 친구에게서 얻어 듣게 된 한국 카세트테이프하나가 치명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테이프의 A면에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이, B면에는 산울림의 베스트가 수록돼 있었다고 하네요.

산울림<사진설명 : 산울림 사진 /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공 >

“록부터 난해한 음악까지, 수많은 음악을 들어봤기 때문에 아무리 기발한 음악이라고 해도 대체로 짐작할 수 있었어요. 어떤 음악, 어떤 가수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대충은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신중현과 엽전들도, 산울림도 완전히 예상 밖의 음악이었어요.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었죠. 브라질의 보사노바도 그렇고 제 3세계 음악은 예상 외의 요소가 많아서 그런 요소들에 매력을 느꼈고 내심 더 큰 자극을 바라고 있었거든요. 사이키델릭이나 개러지에는 그런 예상 밖의 요소가 있었는데 한국 록은 더욱더 예측 불가능했던 거죠. 더욱 놀랐던 것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앨범이 1974년 작품이었다는 사실이었어요.”(49쪽)

그는 어쩔 수 없이 한국 땅을 밟아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당시만해도 영미 록밴드의 자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곳이 일본이었습니다. 새 앨범이 금방금방 수입되고 온갖 잡지들도 다양하게 출간됐습니다. 그래서 갈증이 없었지만 한국 록음악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어떤 자료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니까요.

1995년 서울 땅을 처음으로 밟은 그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레코드 가게가 보이는 곳에서는 무작정 내려 음반을 샀습니다. 신중현 혹은 산울림이라는 글자를 기억했다가 재킷을 보고 사는 식이었지요. 그렇게 올 때마다 레코드를 사 모으고 다른 단골 손님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면서 밴드까지 시작하게 됐고 한국 록음악계와 자연스럽게 엮이게 됐습니다.

신중현과엽전들<사진설명 : 신중현과 엽전들 /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공>

책 작업을 한 것은 2013년이고 이 책은 지난해 5월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습니다. 그는 “처음엔 나를 취재하러 왔던 일본 칼럼니스트와 술자리에서 한국 생활과 음악에 대한 수다를 떨었는데 책으로 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했던 게 전부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잊고 있었는데 그 칼럼니스트가 다시 연락을 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면서 “20년 전의 나처럼 한국 록음악을 알고 싶은 일본인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을 만들어보자는 게 시작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일본인에게 참고가 될 만한 한국 록음악책이었지만, 한국 록음악을 한눈에 훑어보고 싶은 누구라도 이 책을 읽어볼 만 합니다. 그가 수집한 희귀한 한국 록앨범 200장도 논평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또 그의 음악적 동료이자 멘토인 장기하, 김명길, 신윤철, DJ소울스케이프와 함께 한 대담의 내용도 귀 기울여 볼만합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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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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