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유성룡’

진정한 전쟁영웅 유성룡과 부끄러움도 기록하는 용기

유성룡_위키피디아

<유성룡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역사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입니다. 방송사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찾아내 사극을 방영하는 것을 보노라면, ‘역사책은 이야기 자판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징비록>이라는 드라마가 새로 시작됐더군요.

알다시피 <징비록>은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으며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책이름입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발굴된 주제 아닌가 싶습니다. 서애야 말로 구국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유성룡은 만 50살에 임진왜란을 겪게 되는데 이때 그의 관직은 좌의정 겸 이조판서, 요즘으로 치자면 부총리 겸 안전행정부 장관쯤이었습니다. 이미 출세한 관료였던 그가 세운 공은 왜란 전과, 전란 중, 전란 후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 동상

<여수 이순신 광장 이순신 동상>

임진왜란 전에 그가 세운 가장 큰 공은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일입니다. 40대 중반에 겨우 종6품인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은 유성룡의 천거를 받아 정3품인 전라좌수사로 전격 발탁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왜군은 서해를 돌아 한강(서울)과 대동강(평양)에 진입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유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도 없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은 병조판사(국방부장관) 겸 도체찰사로 임명돼 군무(軍務)를 총괄합니다. 이듬해에는 영의정에 올라 이기적이면서도 무능했던 선조를 잘 보필해 전란에서 나라를 구하게 됩니다.

<징비록>을 읽어보면, 유성룡을 가장 괴롭힌 업무는 군량 조달이었습니다. 흔히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전투에서의 승리로 치환하고, 그래서 작전만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유일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기전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입니다. 보급 없이는 작전을 펼칠 군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에 5만 군대를 파병했지만 군량 조달은 조선 정부의 몫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굶어죽는 백성이 태반인 마당에 조선군은 물론 명나라 군까지 먹일 식량을 조달하느라 유성룡은 피를 말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로부터 강제로 양식을 수탈하지 않고 백성들 스스로 협조하도록 하는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임진왜란_위키피디아

<임진왜란 / 출처 :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두려움에 떨며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려던 선조를 말려 주저앉히고,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한 뒤 일본과 화의를 궁리하던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계속 싸우도록 설득한 것도 그의 공입니다.

하지만 그 끝은 초라했습니다. 1598년 당파 갈등 속에서 탄핵을 받게 되자 유성룡은 “신은 죄악이 너무 커서 천지 사이에서 스스로 용납 받지 못하고 황야에 물러나 엎드려 날마다 큰 형벌을 기다렸습니다. (중략) 신은 신세가 곤궁하고 사리가 다하여 정신이 떨리고 두근거려 아침저녁으로 죽게 된다”며 스스로 사직을 청합니다.

전쟁 뒤 그의 가장 큰 공은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을 저술한 것입니다.

징비록_懲毖錄(징비록)_위키피디아

<징비록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지만“‘시경’에 ‘지난 일의 잘못을 경계하여 뒤에 올 환난을 조심한다’고 했다”며 붓을 들었습니다. 왜란 중에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과 각종 사료 등을 집대성한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쟁문학의 백미로 손꼽히고, 얼마 뒤에는 일본에서도 번역돼 출간됐다고 합니다. 유성룡은 <징비록> 저술을 마치고 3년 뒤인 1607년 66살을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400~500년 전 이 땅에 살다 간 사람이라지만, 유성룡이 후세에 주는 여운은 깊기만 합니다.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낙향하는 길에 노잣돈이 없어 곤란을 당할 정도로 청빈하고, 최고위 관료였지만 군림하는 ‘갑질’ 대신 스스로 실천하고, 이순신 장군을 발탁할 정도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 훌륭한 지도자가 그립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순혁 기자

|

‘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