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 치료법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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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

메르스, 이른바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전염병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병에 대한 공포로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채 출퇴근길을 재촉하고, 학교들은 유례없는 집단 휴업 중입니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고 국내에서도 모이는 것 자체를 꺼려해 웬만한 모임들은 연기되거나 취소돼, 경제에도 안 좋은 여파가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인류 발전의 역사는 전염병과의 사투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천연두나 홍역, 콜레라 같은 역병은 전쟁 이상으로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전쟁은 적에게 자비라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역병은 그조차 기대할 수 없는 무서움 그 자체였습니다. 실제 20세기까지 인류가 치렀던 수많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조사해본 결과, 전투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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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 푸생의 The Plague at Ashdod(흑사병)’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

사람들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는데 전력의 우열이 아닌 전염병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 사례도 여럿입니다. 14세기 후반 몽골 족은 이탈리아 제노바인들이 흑해 북부 연안에 만든 식민도시였던 카파(현 테오도시아)를 공략하며 흑사병(페스트) 걸린 사체를 투석기로 집어 던졌고, 그 결과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돼 중세 유럽 인구의 3분 1이 흑사병에 희생됩니다. 16세기 스페인 코르테스가 50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멕시코 아즈텍을 점령할 때, 영국군이 미국 대륙에서 원주민을 쫓아낼 때는 면역력이 없던 인디언들을 상대로 천연두를 퍼트리는 생물학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인류의 비극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전염병도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정복됩니다. 각종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그에 기초해 치료법의 혁신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관찰의 힘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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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파스퇴르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

1879년 루이 파스퇴르는 프랑스 파리 고등사범학교 연구실에서 닭 콜레라 연구에 한창이었습니다. 닭 콜레라에 감염된 닭들은 먹지도 못하고 비틀대며 웅크린 채 졸다가 탈진한 채 하루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파스퇴르는 콜레라에 걸린 닭의 피를 새로운 닭에게 주사하며 콜레라균 연구를 진행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파스퇴르는 몇주 동안 여름휴가를 가게 됐고, 조수들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콜레라균을 배양해 멀쩡한 닭에게 주사하는 작업을 이어가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조수들은 지시를 깜빡 했고, 휴가에서 돌아온 파스퇴르를 맞는 것은 배양기 속에서 너무 약해져 쓸모 없어져버린 콜레라균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파스퇴르는 거의 쓸모 없어진 콜레라균을 닭들에게 주사하도록 했답니다. 역시나(?) 약한 콜레라균을 주사 받은 닭들은 뭔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할 뿐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친구 수의사에게서 독성이 높은 콜레라균을 다시 받아 새 닭들과 묵은 콜레라균을 주사 받았던 닭들에 각각 주사했습니다. 그 결과 새 닭들은 예외 없이 모두 죽었는데, 옛날 닭들은 조금 쇠약해지기만 했을 뿐 다시 멀쩡해지더란 것입니다. 눈치 채셨나요? 면역이란 개념, 백신 주사의 기본원리가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정복됐지만, 발진티푸스란 전염병이 있습니다. 수백년 전부터 전쟁터와 감옥, 집단수용소 등 비위생적인 집단 수용시설에서 쉬 발생해 극심한 두통과 고열, 기침, 정신착란 상태에 이르게 하는 병이랍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때는 전쟁보다 발진티푸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이 더 많았을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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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rles Jules Henri Nicolle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

1900년대 초반 튀니지에서 일하던 프랑스인 의사 샤를 니콜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발진티푸스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게, 밖에서와 달리 병원에서는 다른 환자들이 발진티푸스 환자들과 어울려도 잘 감염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도 병원에서는 발진티푸스 환자들과 함께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데, 병원 밖에서 치료를 하고 올 경우엔 종종 이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서 그는 병원 입구까지 기다시피 와서 쉬고 있는 발진티푸스 환자를 발견하고, 해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사실 병원 안이라야 별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환자들도 위생에 신경을 써 자주 씻도록 했고, 수염을 깎아주고 깨끗한 환자복을 입고 생활하도록 한 게 전부였습니다. 이 병의 상징적인 경계선이었던 병원 입구는, 위생 상태가 확연하게 갈리는 선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착안점에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발진티푸스의 원인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이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의 배설물에 존재하는 리케차라는 병원균을 통해 감염되는 병이더란 것입니다. 사를 니콜은 훗날 이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받게 됩니다.

전염병 역사를 돌아보며…

닭 콜레라와 발진티푸스 두 사례를 보면, 의학계에서의 혁신이란 것은 오랜 고민과 관찰, 그리고 사소한 의문점도 놓치지 않는 감수성이 기본인 듯합니다. 기대 섞인 전망이지만,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메르스의 확실한 치료법과 백신도 그런 과정을 거친 혁신을 통해 곧 개발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전망과 별개로 외출 전후 손발을 깨끗이 씻는 개인위생에는 철저해야겠지만 말이죠^^;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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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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