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티무르 왕과 ‘삶의 이유’

지금으로부터 700~800년 전 중앙아시아~중동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위대한 지배자가 있었습니다. 기동력 뛰어난 몽골군의 전통에 이슬람적 윤리관을 결합시킨 강력한 군대를 이끌던 그는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서쪽으로는 이라크 바그다드와 아나톨리아 반도(터키), 남쪽으로는 인도 델리까지를 자신의 말발굽 아래에 뒀습니다. 유럽에서 태멀레인(Tamerlane)으로 불렸던, 절름발이 티무르 왕이 그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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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전장에 적들의 해골로 피라미드를 만들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부유한 주민들을 고문해 보물을 어디에 감춰뒀는지 자백받는 별도 부대를 운영하기도 했다죠. 거세게 저항하는 도시는 함락시킨 뒤 주민 수천명을 생매장하거나 익사시키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는 군사적으로는 뛰어난 혁신가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해발 6000m가 넘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 델리 정복에 나선 것은, 스위스 산맥을 넘었던 나폴레옹에 비유할 만합니다.

진군하는 마을마다 모두 불태우고 주민들을 살육한 뒤 델리 인근에서 인도군 주력을 맞닥뜨렸을 때, 그의 천부적인 군사 재능은 빛을 발합니다. 인도군의 비장의 무기는 코끼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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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위키피디아>

쇠비늘 갑옷을 차려 입은 군사용 코리끼들의 상아에는 날카로운 칼이 달려 있었고 등에는 궁수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런 코끼리 100여 마리가 동시에 뛰어나간다면 그 앞에 놓인 적들은 혼비백산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겠죠.

티무르는 낙타로 코끼리 군단에 맞서게 했습니다. 낙타 등에 목재와 짚을 얹은 뒤 여기에 불을 붙이고 채찍질을 한 것입니다. 등의 열기와 매캐한 연기로 인해 반쯤 실성한 낙타들은 울부짖으며 뛰쳐나갔고, 이런 모습을 본 코끼리들은 당황해 뒤돌아 뛰기 시작했습니다. 인도군은 자군 주력무기인 코끼리에 의해 초토화됐습니다.

티무르는 당시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였던 델리를 잿더미로 만들고 주민들 수만명을 학살했습니다. 티무르가 2주일 동안 머무른 흔적을 지우고 델리가 과거의 모습처럼 재건되는 데에는 100년 이상 세월이 흘러야 했다고 합니다.

델리

티무르가 세운 제국은 칭기즈칸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보다는 확실히 컸습니다. 게다가 알렉산더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티무르는 강도단 두목에서 시작해 대제국을 일궈냈습니다. 이렇듯 객관적인 성취에 있어서 앞서지만, 알렉산더 대왕에 비해 티무르는 후세인들에게 있어 무명에 가깝습니다.

이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티무르는 정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살육자였다는 점을 한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약탈과 살상이 침공의 목적이었기에, 그가 죽은 뒤 그의 제국은 온전히 보존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사에 별다른 흔적을 남길 수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폴레옹은 결국 적들에게 패하고 조그만 섬에 유폐돼 삶을 마쳤지만 그의 삶을 다룬 전기는 후세들에 의해 끊임없이 읽히고 있습니다. 그의 진군과 승리는,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혁명 정신의 확장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티무르의 대제국은 만들어지고 존재해야 할 이유가 뭔지 불분명했습니다. 지금은 당시처럼 무자비한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티무르 왕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도 없겠죠. 하지만, 자신이 살던 시대의 가치관에 맞는 방식의 성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도 티무르와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티무르는 현대인에게도 하나의 교훈을 주는 듯합니다.

‘당신에게 성공의 목적은 무엇인가? 혹 성공을 위한 성공에 목매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이 버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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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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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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