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공주는 ‘갑’처럼 살았을까?

총애받던 왕의 딸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효명옹주’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조 전 부사장이 일반 직원 출신 부사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권한에 없는 횡포를 부렸을지도 의문이지만 ‘가해자 보호’에 치중했던 회사도 시비를 가리는 일에 좀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요. 사건의 파장이 이만큼 거지는 데에는 아무래도 ‘회장님의 딸’이라는 조 전 부사장의 신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임원에서 시작해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며 부러운 것 없이 살았을 조 전 부사장을 보노라면, 조선시대 공주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존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행실이 문제가 돼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경우도 있었는데, 16대 왕 인조의 딸 효명옹주가 대표적입니다.

효명옹주는 병자호란 이듬해인 1637년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오랑캐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두 아들까지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뒤에 얻은 딸을 인조는 끔찍이도 사랑했다고 합니다. 중전을 모시던 궁녀 출신인 조 귀인 또한 인조의 총애를 독점해 주변의 질투를 샀다고 합니다. 대비(왕의 어머니)와 중전(왕의 정실부인)이 없는 궁궐에서 효명옹주 모녀는 위세가 등등할 수밖에 없었겠죠.

효명옹주가 10살이 되던 해 인조는 신랑감을 간택하도록 했습니다. 조 귀인은 3순위로 올라왔던 김세룡의 사주팔자를 조작해 1순위로 올리고 사위로 삼았습니다. 김세룡은 당대의 실력자인 김자점의 손자였습니다. 혼인에 쓰인 옷과 물품들은 호화롭기 그지없었고, 혼례 뒤에도 효명옹주는 2년을 더 궁궐에서 살았습니다.

혼례를 올리고 사흘 뒤 열린 잔치자리에서 효명 옹주는 올케와 자리싸움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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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세자, 봉림 대군에 이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 대군의 처와 서로 상석에 앉겠다며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인평 대군은 효명 옹주보다 15살이나 배다른 오빠입니다. 싸움은 인조가 나서 효명 옹주가 상석에 앉도록 정리하면서 끝났다고 합니다.

잔칫날 주인공보다 상석을 고집한 인평 대군의 부인도 옹졸하지만, 어린 나이에 안하무인격으로 고집을 세운 효명옹주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리 없었겠죠. 모든 사람들의 떠받듦 속에서 자라며 배려나 양보를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길러졌다는 쑤근거림을 들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잘 나가던 효명옹주도 인조가 세상을 뜨면서 처지가 곤란해집니다. 효종(봉림대군)은 왕위에 올르자마자 효명옹주의 시할아버지였던 김자점을 귀양 보냈고, 위기감을 느낀 조 귀인과 효명옹주는 인조의 두번째 정비였던 장렬왕후 조씨와 효종을 저주했다는 조사를 받게 됩니다. 결국 조 귀인과 김자점, 김세룡 등은 사형을 당하고, 효명옹주는 작위를 박탈당한 뒤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이후 ‘김처’(김씨의 처)라는 호칭으로 불린 그녀는 자식도 없이 1700년(숙종 26년) 쓸쓸히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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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전 부사장의 잘못이 있다지만 효명옹주에 비할 바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도 다릅니다. 그러나 부모덕에 남들 앞에서 군림하는 삶을 살다가 한 순간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조 전 부사장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한 고위법관은 사견을 전제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죽거나 다친 것도 아니고, 구속될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본인으로서도 억울해할 것 같은데, 구속되는 게 개인적으로 약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평생 해보지 않은 고생을 해보며 삶을 뒤돌아보며 배우는 것도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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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비난이나 처벌까지 잘 이겨내고, 인품과 능력 면에서 더 뛰어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기대가 느껴졌습니다. 효명옹주는 모든 걸 잃은 뒤에야 후회를 했겠지만, 조 전 부사장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습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나 사회적인 평가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 전 부사장의 과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기대가 됩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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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

2 thoughts on “조선시대 공주는 ‘갑’처럼 살았을까?

  1. 글 잘읽었습니다 .하고싶은말은 과거 역사속에 이야기하고 현시대 이야기를 가지고 짜마추는것 자체도 모순인것 같습니다.
    옛날 역사속 이야기는 모두 모순 덩어리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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