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가 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초능력자가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Frozen; 2013년>의 여주인공 엘사는 주위의 수증기를 끌어 모아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결정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압도한다. 미국만화에서 이런 식의 초능력자 계보는 <엑스맨 X-Men>의 1960년대 원조멤버 아이스맨(Iceman)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만화에도 유사한 능력자인 쿠잔(별명은 아오키지)이 <원피스>의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 초능력자의 원조가 나왔으니 DC 코믹스의 간판급 수퍼히어로 결사체 ‘미국정의연맹’(Justice League of America)소속의 아이스(Ice) 혹은 아이스매이든(Ice-Maiden)이 그러한 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심지어 소설에서 초능력자들이 선보이는 기상천외한 재능에는 거의 한계가 없나 보다. 아무런 점화장치 없이 오로지 마음의 힘으로만 불을 일으키는가 하면(念火; mental fire raising) 텔레파시와 투시, 천리안, 예지안, 염동력(Telekinesis),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 엠파시(Empathy) 그리고 마인드콘트롤(Mind Control) 등 캐릭터에 따라 저마다 다양한 능력을 구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초능력이 과연 가능할까? 아울러 그러한 능력을 보유한 당사자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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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 작가들은 인간의 진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늘 진행 중인 이상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는 적어도 우리 중 일부라도 그런 돌연변이가 될 가능성을 상상한다.

초능력을 과학소설계와 초심리학계에서는 흔히 ESP라 일컫는데, 이는 ‘여분의 개발되지 않은 감각을 통한 지각능력(Extra-Sensory Perception)’이란 뜻이다. 과학소설에 초인을 등장시키는 아이디어는 니체의 관념론적 초인사상보다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힘입은 바 크다. 심지어 20세기 초중반에는 실제로 ESP를 학구적으로 접근한 학자도 있었다. 미국 듀크대학의 이상심리학자 J.B.라인(Rhine; 1895~1980)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저서 <여분의 감각을 통한 지각 Extra-Sensory Perception; 1934년>에 담았는데, 과학계의 인정을 받을만한 보편타당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실험대상자들의 ESP자질이 각기 들쑥날쑥했던 데다 그나마 가장 나은 능력자로 여겨진 일부 피조사자들은 나중에 사기꾼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에서 예로든 능력 중 일부는 첨단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조만간 현실화될 기미가 보인다. 염동력이 바로 그러한 예다. 사물을 정신력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물리법칙에 위배된다. 학교에서 배운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떠올려보라. 물리적 힘이 가해지지 않은 물체가 그것을 움직이고 싶은 사람의 간절한 마음에 감동해(!) 따라 움직일 가능성은 0이다. 하지만 뇌파(腦波)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뇌파는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의 흐름으로 기본 주파수는 0~30Hz, 진폭은 약 20~200Μv다. 전위는 두피에서 측정했을 때 약 100Μv, 피질에서 측정했을 때 약 1~2mV로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이 개발 중인 BMI(Brain Machine Interface) 기술을 이용하면 직접 손발을 쓰지 않고 뇌파로만 기계장치를 조작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 전동휠체어와 로봇 그리고 주방기기와 스마트폰까지 작동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학자들은 향후 BBI(Brain-Brain Interface) 기술의 등장까지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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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간의 뇌와 뇌를 직접 연결해 생각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웍으로, 뇌파의 전기신호를 이용한 일종의 인공 텔레파시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사람의 뇌파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 상대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제 자동차와 선박은 물론이고 냉장고와 컴퓨터까지 뇌파로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생물학적 돌연변이로서 특정한 초능력을 공짜로(!) 갖고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세상에서 당신 혼자만 또는 적어도 극소수만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면 그저 사는 게 편리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예컨대 당신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신나기만 할까? 작가들의 사고실험 결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대신 다음과 같은 곤경에 빠질 확률이 높다.

1. 모르모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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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 갇힌다. 일당백 일당천의 수퍼병사를 만들기 위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정부와 군(軍)은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파헤쳐서 초능력을 갖게 된 비결을 알아내려들 것이다. 프로젝트의 비윤리적인 성격상 보안을 위해 당신은 영영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커트 뷰식(Kurt Busiek)의 만화 <수퍼맨, 비밀에 싸인 정체 Superman: Secret Identity>(시공사, 2011년)는 수퍼맨조차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2. ‘갑질’놀이에 맛 들려 또라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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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의 눈높이에서 보통 인간은 얼마나 하찮아 보이겠는가? <엑스맨>의 초인 악당 매그니토가 내세우는 논리는 나름 합리적이다. 몸이 바뀌면 마음도 바뀌는 것이다. 당신보다 능력이 턱없이 뒤떨어지는데 무조건 같은 대접을 해달라면 책장 한번 넘기지 않고 대입시험에 만점 받게 해달라는 억지와 뭐가 다른가? SF에 나오는 초능력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기적인 악당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이 신의 반열에 올라선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장편소설 <정신기생체 The Mind Parasites; 1967년>에는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어도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양심적인 초능력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앨런 무어(Alan Moore)의 만화 <워치맨 Watchmen; 1986~87년>에서 시공(時空)을 멋대로 주무를 만큼 강력한 권능을 지닌 맨해튼은 정작 자신의 초능력이 세어질수록 인간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반비례하여 인류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이 초인적인 능력을 갑자기 선사받는다면 조만간 매그니토와 맨해튼처럼 성격이 이기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3. 왕따가 된다.

초인소설의 고전이라 할, 올라프 스태플든(Olaf Stapledon)의 <이상한 존 Odd John; 1935년>에서 존을 비롯한 소수의 초능력자들은 보통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떠나 벽지의 섬에 틀어박힌다. A. E. 밴 보긋(van Vogt)의 <슬랜 Slan; 1946년>에서도 초능력자들은 이들을 박멸하고자 혈안이 된 정부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다. 설령 사회에 기여하는 공인으로 웬만큼 자리 잡은 뒤라도 툭하면 오해받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 일쑤다. 사람들이 초능력자를 경계하다 못해 멸종시키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인류가 구인류를 대체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잘나면 본인 잘못과 상관없이 비난의 과녁이 되기 쉽듯, 초능력자들은 불안과 질투에 시달리는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정부에 의해 언제 숙청당할지 모른다. <워치맨>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신랄한 패러디다. 워치맨들은 사회의 치안이 안정되니까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돌연 불법자경단 취급을 받으며 토사구팽 된다. 그래서 수퍼맨과 스파이더맨처럼 대부분의 수퍼히어로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신분을 숨겨야 하며 엑스맨들은 정치성향을 떠나 생존을 위해 제비어 박사, 아니면 매그니토를 후견인으로 택해야 한다.

그러니 당신이 초능력자가 아니라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시라. 더구나 얼음파도를 만들어 내거나 다른 사람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반감을 품기 쉬운 초능력에 무임승차하는 대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른바 합법적인 능력을 쟁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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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허구의 수퍼 히어로와 함께 현실을 도피하는 대신) 어떤 분야에서건 눈앞의 현실을 차근차근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자 아니겠는가? 우리사회에 정말 필요한 인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능력자가 아니라 정당한 노력으로 실력을 쌓은 능력자다.

고장원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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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평론가, 작가, 과천과학관 SF2014 외 다수 과학소설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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