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시간으로 나누다, 치페르블라트(Ziferblat)

요즘 ‘커피’를 마시러 카페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엌 주방부터 사무실 탕비실까지 커피는 그야말로 어디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은 언제든 가능하죠. 그럼에도 수많은 소비자가 여전히 카페를 찾는 건 다름아닌 ‘공간’ 때문입니다. 친구와 수다를 떨기 위해 카페에 들르고, 과제 하려고 카페를 찾습니다. 삶의 속도가 빨라진 현대 사회에는 잠시의 공간, 잠시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소위 ‘모먼트(Moment)족’도 많아졌습니다. 대낮 광화문 주변 카페에선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잠시 수첩에 끄적이다 다시 뛰어 나가는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죠.

결국, 카페는 커피가 아닌 공간을 파는 셈입니다. 여기서 판매자의 ‘상품’과 고객의 ‘니즈(needs)’에 괴리가 생깁니다. 카페 주인은 ‘커피’를 팔고, 고객은 ‘공간’을 사는 구조 탓이죠. 오랜 시간 카페에 있고 싶어하는 소비자는 ‘내가 너무 오래 죽치고 있는건가’라며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잠시 시간 보내려 카페를 찾은 소비자는 커피 한 잔의 가격이 부담스럽습니다.

시간제 카페 「치페르블라트」는 정확하게 이 점을 포착했습니다. 치페르블라트에는 커피와 빵과 과일이 있지만 그 어느 것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치페르 블라트가 파는 건 시간이죠. 고객은 입구에서 시계 하나를 덜렁 들고 와서 마음껏 시간을 보냅니다. 소파에 기대어 쉬는 사람, 비치된 피아노를 치는 사람. 자기가 먹을 음식을 챙겨와 먹는 사람, 심지어 캔버스를 펼쳐 놓고 자기 작품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1분당 5펜스(한화로 대략 85원, 회원일 경우 3펜스)만 내면 카페에서 무엇을 하든 자유죠.

 “당신이 이곳에서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무엇이든 무료입니다.”
시간제라고 하니 ‘지나치게 계산적인 느낌을 받지 않을까? 분침이 째깍거릴 때마다 과금이 된다는 콘셉트는 가격이 얼마든 공간을 냉혹하게 느끼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치페르블라트를 방문해보면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아날로그 감성의 인테리어부터 점원들의 무심한 듯 따뜻한 서비스까지, 마치 집에 있을 때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가게 풍경으로만 보면 마치 대학 동아리 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건 창업자 Ivan Meetin의 경영 모토 덕입니다. 처음부터 그는 치페르블라트를 가정의 확장이자 새로운 공동체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상점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았죠. “창조하고, 협동하고, 함께 노는 어른들을 위한 통나무집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돈이 부족한 고객에겐 청소 자원봉사로 대신하도록 하는 등 공간에 인간 냄새를 가미했습니다. 무척이나 귀여운 아날로그 시계를 비치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겠죠. 2011년 러시아에서 첫 문을 연 치페르블라트는 현재 10여 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런던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또, 뉴욕 매장 역시 곧 오픈을 앞두고 있다고 해요. 수많은 콘셉트의 카페들이 생겼다 망하는 요즘, 조그맣게 시작해 전 세계에 유행처럼 퍼지는 치페르블라트의 성공은 눈에 띕니다.

올해 초, 뉴욕의 한 맥도날드 매장이 인종 차별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으신지요. 한인 노인들이 해당 맥도날드 매장을 모임 장소 삼아 오랜 시간 머물면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오랜 시간 보내는 노인분들을 보다 못해 점장은 나가달라 요구했고, 노인들이 불친절하다며 대응하는 과정에 갈등이 커진 사건이었습니다. 한인 커뮤니티와 맥도날드 측의 중재로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합니다. 가게에서 실제로 파는 ‘공간’에는 가격 측정이 돼 있지 않다는 것. 치페르블라트의 성공담은 ‘독특한 콘셉트의 승리’가 아닙니다. 이들의 진짜 혁신은 공간을 시간으로 나눠 파는, 즉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에 차등적인 가격을 책정한 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저 가격을 새롭게 나누는 것, 혁신은 그런 작은 차이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SK이노베이션

|

대한민국을 넘어 더 큰 세상으로 에너지·화학의 큰 그림을 그립니다.

2 thoughts on “카페를 시간으로 나누다, 치페르블라트(Ziferblat)

  1. 위에 글대로 어쩌면 진짜 삭막하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아닐꺼 라고 하는데 음. 진짜 들어가보기 전에는 모르듯이 아직은 차갑게느껴지는건 어쩔 수 가 없네요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