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패러디, 오마주의 차이

인기작가 신경숙씨의 표절 문제가 여름 문턱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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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 서울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신경숙 작가 표절사태와 한국문화권력의 현재’ 토론회/
경향신문 사진>

논란이 제기되고 오랜 기간 침묵으로 일관해 오던 작가는 결국 표절 지적을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검찰 고발로까지 비화된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되는지 지켜보는 것과 별개로, 이번 기회를 통해 표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표절은 지적 노력과 노동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을 훔치는 것입니다. 도덕과 양심에 반하는 문제이자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범죄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곳곳에 표절이 만연해 있습니다. 가요 등 대중문화계에서도 잊을만하면 나오는 것이 표절 논란이고 청문회마다 단골 쟁점으로 꼽히는 것이 논문 표절입니다. 문제는 표절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는 아직도 관대함이 더 많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듯 표절 논란을 자주 접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대중문화계입니다.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이 많다 보니 그런 논란이 더 잦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번 표절 논란에 대응하는 해당 출판사의 해명을 보며 잠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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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매대에 진열된 신경숙 작가의 책/ 경향신문 사진>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니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니 하는 난해한 용어들을 내세워 항변하는 모습에서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년간 대중문화계, 특히 가요계에서 표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해명을 보면 이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와 함께 레퍼런스, 샘플링, 오마주, 패러디 등의 용어도 종종 사용됐습니다. 표절이 아님을 항변하는데 사용됐던 이 단어들. 각각의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표절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오마주나 패러디에 대해서는 다들 많이 들어보셨겠지요. 표절과 오마주, 패러디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이번 표절 논란 기사에 붙은 한 댓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들의 차이점을 간단 명료하고도 기발하게 설명했습니다.

‘원작을 알면 재미있는 것은 패러디, 원작을 알리고 싶은 것은 오마주, 원작을 감추고 싶은 것은 표절.’
어떻습니까. 한번에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나요?

패러디는 누구나 아는 것을 끌어와 풍자하거나 재미있게 전달하는 표현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잘 알려진 원작의 소재나 표현, 문체 등을 자신의 창작품에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지요. 문학이나 영화, 음악, 미술 등 창작의 전 분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독창성과 풍자적인 표현으로 재탄생됩니다. 원작과 패러디 작품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구분된다는 것이 사전적 설명입니다. 앞서 말했듯 원작을 이해할 경우에라야 이 패러디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년전 개봉됐던 <무서운 영화>나 <재밌는 영화> 등은 대표적인 패러디 영화입니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감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원작의 유명한 부분을 차용해 와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존경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입고 나왔던 노란 트레이닝복을 기억하시나요? 이소룡을 떠올리게 하는 이 복장은 타란티노 감독이 이소룡의 출연작 <사망유희>를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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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빌’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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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망유희’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저수지의 개들>에도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을 오마주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수 이승환이 10집에 수록했던 ‘리즌’은 비틀즈를 향한 오마주곡이었습니다. 가수 이적의 정규 5집에도 비틀즈를 오마주한 ‘이십년이 지난 뒤’가 수록돼 있지요.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오마주는 사전에 대상을 밝히고 언급해야 합니다. 또 그 부분을 차용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옳은 순서입니다. 이전에 발표됐던 이효리의 ‘겟차’, 효민의 ‘담’, 현아의 ‘어디부터 어디까지’ 등은 곡이 발표된 뒤에 표절 논란이 일자 뒤늦게 “오마주 한 것”이라며 해명에 나섰던 사례들로 꼽힙니다.

지난해 ‘달리 반 피카소’라는 곡으로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힙합뮤지션 빈지노 측은 당시 “표절이 아닌 샘플링곡”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샘플링은 원곡 특정 부분의 멜로디나 사운드를 가져오되, 전혀 다른 장르로 만들어내는 등 창작을 가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원작자나 이같은 권리를 가진 당사자에게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레퍼런스는 참고, 혹은 참고자료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좋은 작품을 참고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자는 차원이지요. 대중적인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잘 만들어진 외국곡을 참고하고 연구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최근 몇년새 이 용어는 표절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변질됐습니다. 입으로는 레퍼런스라고 하면서 실상은 베끼는 행태가 빈번합니다. 심지어 잘 만들어진 외국곡 몇곡을 가져다가 부분 부분 떼낸 뒤 이를 새롭게 조립하는 식으로 노래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트렌드를 살피는 것과 창작자의 독창성을 유지하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이 상황은 국내 가요계의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레퍼런스와 함께 나오는 말이 바로 장르적 유사성입니다. 표절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이같은 설명이 자주 따라 붙습니다. 올 초 버벌진트가 <언프리티랩스타>에서 만든 곡 ‘마이 타입’을 두고 오마리온의 ‘포스트 투 비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때 소속사에서는 흑인 음악 장르인 래칫과 장르적으로 유사할 뿐 멜로디나 구성 코드, 편성 등에서 다른 곡이라고 반박했었죠. 지난해 영화 <수상한 그녀>에 나왔던 ‘한번 더’ 역시 페퍼톤스의 ‘레디 겟 셋 고’와 비슷하다는 문제제기가 됐으나 역시 ‘장르적 유사성’으로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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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사실 어디까지가 레퍼런스이고 샘플링이고 표절인지, 어느 정도가 장르적 유사성인지 등을 기계적으로 나누고 판단하기는 힘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사건과 해명들을 보면 아직 이같은 용어의 개념도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같은 관행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법적 기준과 제재방안이 정비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창작자들과 관련 주체들이 건전한 양심과 상식에 기반해 자정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이 창작물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건전한 비판의식과 애정을 갖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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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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