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신> 한국인 최초 우승자 ‘조성진’, 그리고 쇼팽 콩쿠르

클래식음악은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적이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부터 한 클래식 음악대회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쇼팽 콩쿠르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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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이미지 출처 : 조성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ongjin.cho

아시다시피 피아니스트 조성진씨가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음반 예약 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음반 시장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인 심사위원 1명이 최저점을 줬다는 콩쿠르 심사 뒷이야기까지 공개되면서 쇼팽 콩쿠르와 조성진씨에 대한 이야기로 온라인 게시판은 더욱 달아올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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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

쇼팽 콩쿠르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피아노 콩쿠르 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대회는 다른 콩쿠르와 달리 피아노 분야에서만 경쟁합니다. 게다가 쇼팽이라는 음악가가 피아노 음악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상징성 때문에 그 권위가 엄청나죠. 자연히 쇼팽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에 대한 관심은 다른 대회에 비해 더 집중됩니다. 실제로 수많은 스타 연주자들을 이 대회는 배출해왔습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치머만,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윤디 리 등이 쇼팽 콩쿠르를 통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권위와 역사만큼이나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1927년 폴란드 음악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대회는 5년에 한번씩 열립니다. 16~30세 연주자들이 쇼팽의 곡으로 경쟁을 펼치지요. 줄곧 동구권 피아니스트가 독식하던 이 대회에서 첫 비동구권 우승자가 나온 것은 1960년으로, 이탈리아 출신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그 주인공입니다.

서구 음악인들이 독식하던 이 무대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0년입니다. 바로 최초의 아시아인 우승자가 배출된 것이지요. 베트남 출신인 당 타이손. 그는 이 대회 최초의 아시아 우승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쇼팽 콩쿠르 대회가 낳은 스타는 따로 있습니다. 본선에서 탈락한 이보 포고렐리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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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렐리치/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유고슬라비아 출신(현재는 크로아티아)이던 그는 예선에서부터 주목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그의 천재성에 흥분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지요. 특별상, 비평상 등을 받으며 그는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 놀랍게도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의 극단적인 독창성이 심사위원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던 것이죠. 결국 그가 탈락하자 아르헤리치는 심사위원직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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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 /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1985년엔 러시아 출신 스타니 슬라브 부닌이 쇼팽 콩쿠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15년간 이 대회는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합니다. 1등 없는 2등, 2등 없는 3등… 이런 표현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얼마나 콧대높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대회인지 알만하죠. 날고 기는 세계의 피아니스트들이 모이는 대회인데도 ‘우리 수준에 맞는 우승자가 없다’고 튕기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15년 뒤인 뉴밀레니엄 첫해, 2000년에 또 다시 사건이 일어납니다. 윤디 리라는 중국 소년이 열여덟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한거죠. 첫 중국인 우승자, 15년만의 우승자, 역대 최연소 우승자. 게다가 토종 중국 교육만으로 이같은 성과를 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으면 예중, 예고를 다니다 혹은 그전에 일찌감치 유학을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윤디리는 중국에서만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연히 윤디리는 역대 최고의 상품성을 가진 스타로 세계 음악계에 급부상하게 되지요. 이 사건으로 중국 역시 잔칫집이 됐음은 두말할나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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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디 리/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윤디 리는 선이 고운 얼굴인데다 페이소스 가득한 표정 때문인지 광고 모델로도 사랑 받았습니다. 헬멧을 쓰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채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나이키 광고가 몇년전 국내에서도 방송됐었죠.

그와 라이벌로 견줘지는 또 한명의 중국인 스타 피아니스트가 있지요. 바로 랑랑인데요. 그는 쇼팽 콩쿠르에는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승부욕 ‘끝판왕’으로 불렸던 그는 일찌감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음악보다는 승부에 대한 욕심이 앞서는 그의 기질을 본 교수가 콩쿠르에 나가지 말 것을 권유했고 그는 이후로 콩쿠르에 출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콩쿠르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변방국 출신들이 자신을 알리고 데뷔하는데 효과적인 발판이 됩니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 저변이 넓은 주류 국가에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더라도 데뷔하고 발탁될 기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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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이미지 출처 : 조성진 페이스북>

2005년은 여러모로 한국에 의미가 있는 대회였습니다. 피아니스트 강충모씨가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을 맡았고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2위 없는 3위에 공동 입상했습니다. 한국인 연주자의 첫 입상기록이지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5년. 조성진씨는 한국인 최초의 우승자가 됐습니다. 조성진씨의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천재를 넘어 영감과 감동을 주는 피아니스트로 꾸준히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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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차장. 아이돌 편애 쩌는 딴따라 b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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