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50년의 역사를 넘어서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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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정유공장이 있는 정유 1팀 회의실로 들어가서 선배님들로부터 대한석유공사 초창기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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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한민국 최초의 정유공장인 대한석유공사가 지어질 당시 국가의 관심이 이곳에 많이 쏠렸을 텐데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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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상달 선배 : 그때 당시 우리 회사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이곳에 와서 공장을 둘러보고 준공식 치사를 할 정도로 대한석유공사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대한석유공사의 정상 가동으로 석유제품이 국내 민간 수요를 충족하고 연간 약 2천 5백만 불의 석유제품을 우리 힘으로 생산하고 공급해서 국내외 석유 시장을 널리 개척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저희도 많은 노력을 했지요. 15년 뒤 우리 회사는 3, 4배로 성장했습니다. 기쁘고 자랑스럽지요. 회사의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준 후배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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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당시 일을 시작했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까?

A. 이상달 선배 : 1964년 2월부터 원유저장 지역에 원유를 받아들이기 위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원유선은 20~30만 톤이지만 그때 원유선은 5만 톤이었습니다. 처음 원유를 받아들일 때 미국 걸프사 정유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원유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색깔이 갈색이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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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남규 선배 : 미국인이 원유저장탱크에 원유를 받아들였을 때 원유가 새어 나올지 모르니까 주의 깊게 경계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유심히 봤죠. 하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근데 갑자기 그 미국인이 와서 탱크 주변을 보더니 물을 발견하고 그것의 맛을 보더라고요. 그 당시 왜 그랬는지 몰라서 제가 “왜 그러냐?”라며 물어봤습니다. 그러니 그 미국인이 “처음에 원유를 받게 되면 원유선 4km 밖의 수중에 있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41톤의 양을 받는데, 처음이다 보니 바닷물이 들어와 탱크에 들어온다. 그래서 탱크가 샌다면 그것은 바닷물이 새어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확인하고자 그 물을 찍어서 직접 맛을 봤다”라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다 그저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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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SK에너지가 이렇게 크게 발전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A. 유병수 선배 : 1964년 제1 정유공장이 지어졌을 때 그곳의 원유 처리용량은 3만 5천 배럴이었습니다. 1965년 5월에는 2차 보수작업을 해서 그때부터 5만 5천 배럴로 확장했습니다. 1969년에는 제2정유공장을 지었고요. 1972년에는 석유화학공장을 지으면서 제3정유공장도 지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정유공장들을 지으면서 규모를 확대했지요. 지금 원유 정제능력은 대한민국 최고인 하루 84만 배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수준의 정제능력을 갖췄다는 것과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에서 지금까지 사고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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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정부의 정유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방향은 이랬습니다. 첫째, 격증하는 석유류 수요를 충족시키고, 둘째, 석유류 가격의 국제 평준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셋째, 석유산업의 안전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유통 구조의 개선과 저장시설 적극 육성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석유 생산 실정은 1964년의 1만 6,020배럴에서 1967년 4만 3,300배럴로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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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도 SK의 행복날개를 보면 반가우시죠?

A. 이붕구 선배 : 제가 예전에 고향인 상주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다 되어서 아들에게 주유소에 들르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아들이 언양에 가서 기름을 넣자고 하는데, 주유소를 보니 SK에너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말했지요, 내가 SK를 다녔는데 어떻게 SK가 아닌 기름을 넣을 수 있겠냐? 결국, 조금 먼 거리이지만 경산까지 가서 SK에너지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도 그렇지요. 조금 멀더라도 SK에너지가 아니면 절대 기름을 넣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항상 행복날개를 가슴에 달고 다니면서 어깨에 힘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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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랜만에 회사를 방문했는데 꼭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A. 이상달 선배 : 제가 1994년 7월에 퇴직을 했는데, 당시 은퇴하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퇴직을 하게 되면서 ‘이 정유시설들이 제대로 운영이 될까?’라는 염려스러운 마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 제가 퇴직할 때 원유 처리 용량이 34만 배럴이었는데, 지금은 84만 배럴이라는 소식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큰 사고 없이 기술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굉장히 수고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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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병수 선배 :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최종현 회장님이 이것을 위해서 정말 멋진 일을 했습니다. 최 회장님은 섬유회사에서 시작한 선경을 에너지, 종합화학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꿈을 울산에서 현실로 이루어냈어요. 최종현 회장님이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학생들하고 같이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상당히 가깝게 지내면서 산유국과의 인맥을 두텁게 만들었고 이러한 인맥을 통해서 원유 확보 능력을 직접 입증했습니다. 또한, 회장님은 미국 유학 시절에 화학을 전공해서 석유화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유공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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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은 대화를 이어가던 중, 선배들의 말을 함께 경청하던 SK 울산CLX 정유 1팀 현진석 교대반장이 말을 이었습니다.

현진석 교대반장 : 제1정유공장은 1963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1964년생인데 제1정유공장도 1964년부터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랑 나이가 똑같은 셈인데, 이렇게 선배님들을 직접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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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선배 : 허허, 그때는 미국인 관리자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3~4번씩 공장을 멈추고 보수했습니다. 그는 식당도 없어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일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배울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도시락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계속 움직이다 보니 다리도 퉁퉁 붓더라고요. 지금은 DCS 모니터링을 하지만 저희 때는 모두 현장에 나가서 차트를 보면서 기록을 하고 했습니다. 또한 요즘은 다 자동화 시스템이 되어서 저희 때랑 비교가 안 되죠? 허허 후배님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그렇게 힘들었답니다.

기술이나 노하우가 전무한 시절, 어떻게 이리 다니고 저리 다니면서 기록을 하고 밸브를 여닫았을까요? 그만큼 대한석유공사 공장 건설 당시의 선배님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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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A. 이상달 선배 : 지금은 비록 퇴직하여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SK에너지의 어느 부서에서 근무했든 간에 30년 이상을 근무한 정년퇴직자들은 기술의 달인입니다. 그분들은 정유공장과 석유공장을 모두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가 다 답변할 수 있고 협조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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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갑주 선배 : 비록 우리는 공장을 떠났지만 완전하게 결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유우회(SK 울산Complex 정년퇴직자들의 모임) 회원들은 차를 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아무 곳에서 기름을 넣는 것이 아니라 꼭 SK에너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습니다. 아직도 애사심을 가지고 생활해요. 현역 시절에 자녀 학비 지원 등 여러 가지 혜택도 받았으니, 회사의 고마움을 절대 못 잊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우리는 영원한 SK에너지의 고객이고 일원이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이번에는 자리에 함께한 현진석 교대반장에게 물었습니다.

 

Q. 제1 정유공장이 지어질 당시의 선배님들을 뵈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A. 현진석 교대반장 :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땀을 흘렸었던 선배님께서 직접 방문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찾아뵙고 싶어도 힘든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회사에도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앞으로 선배님들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배님들을 본받으면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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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배님들의 노력이 많은 밑거름이 되었죠?

A. 현진석 교대반장 : 맞습니다. 저도 처음에 입사했을 때 다른 선배님들 밑에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정기보수 때 사다리를 오르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은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 동료는 선배님들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전을 우선시한 선배님들의 애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입사 초기 선배님들과 같이 공정을 어렵게 살려내고 정유공장을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과거 선배님들의 흘린 땀들이 지금 세계 최고의 울산Complex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들 나이 또래의 신입사원 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제가 선배님들로부터 받았던 애정과 땀의 의미를 다시 후배들에게 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50년의 역사를 넘어선 SK에너지, 대선배들과의 대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선배들과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시간, 다음 화에서는 수십 년 만에 현장을 찾은 선배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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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SK이노베이션 정유사업 자회사 SK에너지의 대학생 기자단 ‘유스로거’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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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 더 큰 세상으로 에너지·화학의 큰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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